아프리카 찍고 북극서 330㎞ 달린 청춘…'나 살아있다'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 2017.04.19 05:20

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저자 조은수씨, '북극권 횡단 프로젝트' 참여

'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저자 조은수씨는 스웨덴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의 북극권 횡단 프로젝트인 '피엘라벤 폴라'에 한국 대표로 선발, 지난 4일부터 4일간 북극권 툰드라지역 330㎞를 썰매개와 함께 달렸다. /사진제공=조은수
조은수씨가 썰매개 6마리와 설원을 달리는 모습. /사진=Nicklas Blom Photography

"추위를 굉장히 많이 타는 체질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얼어죽을 것 같았던 기억이 가득해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곳에 왔나' 속으로 욕도 수십 번은 했어요. 제 숨소리와 썰매개가 달리는 소리 말고 아무것도 없는 하얀 적막뿐이었죠."

4년 전, 삶의 이유를 도무지 찾기 어려웠을 때 편도티켓 한 장 달랑 들고 무작정 아프리카로 떠났다. 6개국에서 10개월여를 방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살고 싶다'는 동력을 찾았다. '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저자 조은수씨 이야기다.

조씨가 이번엔 북극권 툰드라 330㎞를 달렸다. 지난 4일부터 4일간 6마리의 썰매개와 함께다. 노르웨이 최북단 도시 시그나달렌에서 출발해 스웨덴 국경을 넘어 북극권 도시 키루나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스웨덴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fjallraven)이 매년 개최하는 북극권 횡단 프로젝트 '피엘라벤 폴라'에 한국대표로 선발된 덕이다.

4일간의 횡단이 남긴 것은 얼어서 갈라지고 피가 난 손가락이다. 지문도 다 닳아서 반질반질해졌다.

"설산을 횡단하기도 하고 기차가 지나가도 될 정도로 꽁꽁 얼은 호수 위에서 캠핑도 하죠. 자고 일어나면 바지, 신발, 장갑 등이 얼어붙어 툭 치면 깨질 것 같아요. 출발하는 날에 맞춰 생리까지 겹친 거 있죠.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 '볼 일'을 봐야 할 때가 가장 서러웠죠. (웃음)"

가장 경이로웠던 순간은 눈이 많이 내린 뒤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화이트아웃'을 경험했을 때였다.

"그 순간엔 어떤 거리감도 느낄 수 없어요. 땅과 하늘을 구분할 수도 없고 사방이 그저 하얀색인 거죠. 시공간이 뒤틀린 곳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하얀 백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도 같고요."


조은수씨는 "아무것도 없이 무섭도록 하얀 적막 속에 있노라면 대자연에 압도돼 숙연해진다. 평생 기억하고 싶은 풍경"이라고 전했다. /사진제공=조은수

전 세계에서 20여명을 뽑는 이 프로젝트는 '온라인투표'와 '자기소개'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지원자를 선발한다. 조씨는 투표기간에 무려 9871표를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최다 득표다. 그는 "아프리카 여행기가 많은 사람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고 했다.

'여행'보다 '방랑'에 가까웠던 아프리카에서의 10개월은 그에게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 시간이다. 고등학교 3학년, 암에 걸린 오빠의 죽음은 그를 뒤흔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이 그의 삶을 잿빛으로 물들였다. 조씨는 당시 자신의 삶을 '길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조각'에 빗댔다. '녹아 없어질 운명'이라는 것. 자신이 누군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진짜로 죽고 싶은 용기도 없었던 때 아프리카 방랑이 시작됐다.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먼 땅으로 떠난 일종의 도피였다.

순탄치 않았다. 아니 순탄할 리가 없었다. 아프리카는 마른 체구, 동양에서 홀로 날아온 낯선 여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첫 여행지 수단에서는 졸지에 학원 영어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그만뒀다. 에티오피아에선 벌레에 사정없이 물려 괴사 위기를 겪었고, 사기를 당하는 건 일상이었다.

조씨는 4년 전 떠난 아프리카 여행에서 비로소 삶의 동력을 찾았다. 이후 그의 여행은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조은수

"죽어도 좋다"는 절망감에서 떠난 여행은 오히려 죽을 뻔한 위기를 여러 번 넘기게 하는 '용기'가 됐다. 북극권으로 떠나는 프로젝트에 선뜻 도전할 수 있던 것도 아프리카에서의 경험 덕이다. 조씨는 이제 "단 한 번의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고민한다.

"여행의 의미요? 글쎄요. 그냥 어쩌다 한 번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으니까요. 어제는 한국인이었지만 오늘은 수단인, 케냐인 혹은 스웨덴인이랄까요. 어딘가로 떠날 때 제가 살아있음을 느껴요. 당분간은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걸 계속 하다 보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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