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카처럼 강렬하거나 마룬5처럼 그루브(리듬감)가 넘실거리는 음악이 아닌데도, 관객 2만여 명은 일찌감치 스탠딩 좌석을 차지하며 ‘감성 록’의 거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성=스탠딩’은 어울리지 않은 조우지만, 이 모순을 이해하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객석을 차지한 나머지 3만여 명은 스탠딩 2만여 명의 우렁차고도 단합된 ‘떼창’을 또렷이 듣고 있었다. 보컬 크리스 마틴도 이 진풍경에 놀란 듯했다. 그래서인지 마치 자신이 곡을 완성할 필요가 없다는 듯 수시로 후렴구를 객석에 넘겼고, 관객은 “이때다”하며 덥석 물고 온 힘을 다해 따라불렀다. 2, 3층 객석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15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 경기장에서 데뷔 19년 만에 첫 내한무대에 오른 세계적 밴드 콜드플레이는 그 존재만으로 5만 명을 휘감았고, 익숙한 선율 한 조각만으로 관객의 목청을 틔웠다.
첫 곡 ‘A Head Full of Dreams’부터 마틴은 가로세로 30m씩 이어진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역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무대는 끝날 때까지 빛과 선의 화려한 곡예 쇼를 보듯 휘황찬란했다. 화려하고 역동성이 강화된 무대 속에서도 가장 가슴을 흔들고 감동을 안겨준 장면은 역시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이크에 입이 닿을 듯 말 듯 낮고 굵은 톤으로 연기하듯 한음 한음 내뱉는 마틴의 가창이었다.
본능적으로 타고난 듯 치유와 위로의 목소리를 지닌 그의 음색은 맑은 날씨에서도 ‘콜드’했고, 가창은 ‘플레이’(연극)적이었다.
쉬운 멜로디로 점철된 히트곡이 많은 까닭에 객석은 모든 곡을 따라 불렀지만, 가장 큰 ‘떼창의 위력’을 보여준 건 “아아아아~” “오오우우~” 같은 가사 없는 후렴구의 반복이었다.
‘Hymn for the Weekend’에서 “오오우우~”, ‘Something Just like This’에서 “두르루드듯~” 등 5만 명이 동시에 합창하는 짧지만 강렬한 허밍 후렴은 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의 소리에 흡착한다는 점에서 감동의 수준이 남달랐다.
‘Everglow’에선 마틴이 피아노 노트 하나를 틀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지만, 전체적 사운드는 ‘서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감미롭고 깊은 마틴의 목소리 뒤에는 언제나 딜레이 계열의 액세서리로 무장한 기타의 따뜻함이 공존했다. 투박하지만 강렬한 무게감을 주는 드럼 없이 연주한 ‘In my Place’가 아쉽다면 아쉬웠을까.
하지만 대한민국을 향한 그들의 따뜻한 위로의 태도는 무대 곳곳에서 빛났다. A-B-C 무대 세 곳을 30m씩 전진 배치해 객석과 거리를 좁히고, 태극기를 허리춤에 차거나 마이크에 씌우는 등 애정을 표시한 무대 매너는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감동의 핵심은 그들의 노래였다. ‘탄핵 찬가’로 쓰일 만큼 부패한 권력 얘기를 다룬 ‘Viva la Vida’, 이혼한 전 부인 귀네스 팰트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지만 ‘세월호 위로곡’로 종종 불린 ‘Fix You’는 그들의 늦은 방한이 갖는 참된 의미를 설명하는 증거였다.
마틴은 세월호와 관련된 얘기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관객”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최고의 밴드가 칭찬하는 최고의 관객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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