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문재인의 '무엇'

머니투데이 박재범 정치부장 | 2017.04.12 06:18

[the300]

#2012년 12월 4일 열린 첫 대통령 선거 후보 TV토론. 이날 주인공은 박근혜도, 문재인도 아니었다. 이정희의 독무대였다. 이정희는 박근혜에 독설을 퍼부었다. 이정희 지지자 뿐 아니라 문재인 지지자들도 환호했다. 대리만족이었다. “이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입니다.”는 말을 남기고 이정희는 사라졌지만 18대 대선은 이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나마 박근혜는 동정을 얻었다. ‘국민행복’과 ‘경제민주화’로 선거를 이끌었다. 패자 문재인의 선거는 딱히 기억에 없다.

#2017년 대선 레이스 전반전. ‘문재인 대세론’이 강했던 것으로 비쳐졌다. 당내 경선, 전체 지지율이 모두 그랬다.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탄생한 ‘대세론’이었다. 문재인이 만든 대세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전반전 기억에 남는 것은 ‘대연정’과 ‘선의’다. 대세의 문재인은 선거를 주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인공은 안희정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내내 이슈는 ‘대연정’이 주였다. ‘안희정 공격’과 ‘대연정 비판’ 외 떠오르는 장면은 없다. 214만명이 참여한 민주당 경선은 이게 전부였다. 문재인의 ‘분노’는 안희정을 이기는 주된 무기였지만 거기까지였다.

#2017년 대선 레이스 중반전. ‘안철수의 시간’이다. 보수의 결집이건 ‘반문(문재인)’의 집결이건 안철수 지지율은 급등이다. 불과 100일전 5%에 불과했던 지지율이 7배 이상 뛰었다. 2012년 안철수 현상을 넘어 ‘돌풍’ ‘제2의 신드롬’ 등으로 불린다. 중도에 터를 잡고 보수의 표를 모으니 확장력도 상당하다. 그렇다고 단순히 구도의 덕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반기문, 황교안 등에게도 비슷한 구도와 환경이 존재했다. 16년전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으로 그를 인터뷰했을 때다. 안철수는 바둑입문서를 50여권 읽은 뒤 비로소 실전에 나섰다고 했다. “백신 유료화에 성공한것도 마케팅 이론을 철저히 배운 다음에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게 정치, 선거도 비슷하다. 대선을 처음 치르는 인물로 비쳐지지 않을 만큼 선거도 제법이다.

#2017년 대선 레이스 후반전. 끝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답답한 것은 문재인이 없는 거다. 이젠 허물어진 ‘문재인 대세론’ 외 딱히 내세울 게 없다. 운명과 숙명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능동’이 아닌 ‘피동’ ‘수동’이다. 촛불에서 시작된 민심을 담은 ‘적폐청산’도 그가 만든 것은 아니다. 받아 안았을 뿐이다. ‘적폐청산’을 바라는 민심도 여전하다. 시대 과제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대선을 한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도 메시지가 ‘적폐청산’에 머무는 것은 걱정이다. 문재인의 강점인 ‘정의, 공정’으로 ‘적폐청산’을 담을 수 있는 데도 메시지는 제자리다. 대선 후보건, 선거대책위원장이건, 대변인이건 모두 한목소리로 ‘청산’을 말한다. 국민연대, 국민포용도 말한다지만 들리는 않는 게 국민 탓은 아니다.


#선거를 캠페인이라고 부른다. 캠페인은 야전(野戰), 즉 광야에서의 싸움을 뜻한다. 전쟁인 만큼 사령관이 중요하다. ‘리더’의 색깔이 묻어나야 한다. 이번 선거는 ‘보수 vs 진보’도, ‘민주당 vs 국민의당’도 아니다. 문재인이 원했건 그렇지않건 ‘문재인 vs 안철수’의 싸움이다. 추격을 허용한 것도 문재인이고 승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문재인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리더’ 문재인의 모습이다. 5년전 국민들의 등에 떠밀려 대선에 출마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촛불 민심에 밀려 대선을 돌파하려 한다면 한계가 부닥칠 수밖에 없다. 촛불 민심, 광장의 열정을 받아서 만든 문재인의 ‘무엇’을 원한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도 좋지만 문재인의 대한민국, 문재인의 정권교체를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의 ‘결단’이든, 문재인의 ‘고뇌’든, 문재인의 ‘선택’이든…. 문재인의 ‘운명’이 아닌 다른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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