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늑대 무리와 싸우는 법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7.04.10 04:36
서구에선 헤지펀드의 경영간섭과 적대적 M&A(인수·합병) 비용이 최근 들어 현저히 낮아졌다. 2014년부터 특히 활성화한 ‘울프팩’(Wolf Pack) 덕분이다. 회사의 지배구조를 변경하고자 하는 다수의 헤지펀드가 공식적인 그룹을 형성하거나 집단적인 의사를 드러내지 않고 주도적인 펀드를 중심으로 같이 행동하는 경우 이를 울프팩이라고 부른다.

울프팩은 북미대륙에서 20세기 이전 여행자들에 의해 많이 관찰된 현상으로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유명한 다큐멘터리영화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유보트들이 무리를 지어 연합국의 상선을 공격할 때 사용한 방법을 지칭하기도 한다. 늑대는 시선 교환과 실제 싸움을 통한 완력으로 무리의 두목을 정하는 사회성이 있는데 늑대무리를 칭하는 울프팩이 헤지펀드의 세계에 비유적으로 도입되었다.

공동의 의사를 가진 주주의 지분 합이 5% 넘으면 공시해야 하는 의무는 울프팩에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각자 알아서 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과연 공동의 의사를 형성한 것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5% 공시를 하는 경우에도 5%에 도달한 시점과 실제 공시하는 시점 사이에(우리는 5일, 미국은 10일) 급속히 지분을 결집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5% 규칙의 대기기간이 울프팩의 형성을 돕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에선 대기기간에 지분의 매집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어느 경우에나 목표물이 된 회사는 기습을 당하게 된다. 늑대들이 눈빛 교환만으로 조용히 무리를 형성해 공격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울프팩은 시장 정보와 주도 펀드의 활동으로 신속히 형성된다. 대상 회사가 특정되면 굳이 상호 직접 교신이 불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선 하루 사이에 울프팩이 형성된다. 소형 헤지펀드들이라 해도 주도 펀드와 그에 보조를 맞추는 다수의 헤지펀드가 연합해 움직이는 경우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삼성을 공격했던 엘리엇과 같은 활동주의 헤지펀드들의 지분 규모는 그 중간값이 6.3%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펀드 연합은 훨씬 더 큰 지분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엘러간, 듀폰 같은 대기업들도 목표물이 된 적이 있다.

울프팩이 형성되면 목표물 회사의 주가는 급상승한다. 더구나 울프팩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의 제고를 내세운다. 행동주의 주주그룹이나 헤지펀드와 외관상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울프팩의 실제 목적에 따라 회사는 장기적으로 가치 하락을 겪게 된다. 실제 목적이 단기적인 주가수익 추구인 경우다. 이 경우 목표가 달성되면 급속한 매도와 주가 하락이 일어난다.


늑대가 무리로 덤벼들 땐 나그네 자신이 지닌 무기가 아무리 고성능이어도 방어에 한계가 있다. ‘미녀와 야수’의 막강한 야수조차 늑대 무리와 싸우다 중상을 입는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어책은 주변의 나그네인 주주들을 불러 모아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신망을 잃은 나그네는 고립무원이 돼 결국 늑대들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삼성은 엘리엇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일반 주주들의 애국심에도 호소하고 합병의 당위성 설명에도 그 나름 성공해 위기를 넘긴 바 있다. 그러나 엘리엇이 울프팩은 아니었다.

이제 삼성 사건으로 국민연금 같은 큰손도 국내 기업이란 이유만으로 쉽게 손을 들어줄 수 없다. 울프팩은 공격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는 특징도 있다. 방어전략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져야 한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기본 원칙으로 풀 수밖에 없다. 경영실적과 준법, 윤리경영으로 회사 안팎의 신뢰를 평소에 축적하는 방법이다. 기관투자자, 활동주의 펀드, 주주가 아닌 언론과 시민사회와도 두루 잘 소통해야 한다. 새 시대 기업 경영자들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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