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꾸미의 정치학

머니투데이 김성휘 김태은 구경민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 2017.04.06 08:58

[the300]종합

정치의 계절, 당신의 꾸미는 안녕하십니까


"꾸미 있어요? 없으면 같이 해요"

조기 대선을 맞아 정치권에 '사람'이 넘친다. 대선을 취재·보도하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새로 충원된 기자는 동료 선후배들에게 '꾸미' 질문을 받곤 한다. 언론에게 ‘꾸미’는 친목 겸 취재 편의를 위해 몇 사람이 그룹을 지은 것을 뜻한다. 작게는 3~5명, 많게는 10명을 넘기도 한다.

요즘은 이런 전통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가 널리 쓰이면서 꾸미의 개념은 더 넓어졌고 더 공개적으로 변했다. 취재진만 아니라 정치인도 '꾸미'를 만들고 서로 뒤섞여 큰 꾸미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정보가 유통되고 공론이 펼쳐진다. 꾸미는 일부의 '은어'에서 정치권 일상을 이해할 때 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일본에서 온 표현, 카톡 타고 '훨훨'= ‘꾸미’는 우리말도, 일본어도 있다. 일본에선 '꾸미'(くみ)라 읽고 조(組)라고 쓴다. 정치권에선 바로 이 뜻을 널리 쓴다. 한 쌍, 또는 어떤 일을 함께 하기 위해 만든 집단이란 의미다. (우리말 '꾸미'는 전혀 다른 뜻이다. 국이나 찌개 따위에 넣은 고기붙이, 즉 고기를 이용한 고명 쯤 된다.) 바로 이 어원 때문인지 ‘꾸미’라는 말을 내놓고 쓴 건 얼마 안 된다. 알음알음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모임을 갖는다는 데서 다소 부정적 뉘앙스도 있다.

그랬던 꾸미가 공개 영역으로 한 발 나온 건 '카톡' 덕이다. 대선주자별로 마크맨(전담기자) '단톡방'은 일상이 됐다. 대선주자 캠프가 마크맨 대화방 하나쯤 개설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소속 정당의 모든 출입기자들에게 일정과 자료를 매번 골고루 공지하기 버겁다. 대체로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야 하는데 얼마나 잘 확인했는지 도달률이 미심쩍다. 단톡방은 보다 확실하다. 누가 읽고, 읽지 않았는지 숫자로 확인도 된다. 각종 의견이나 질문 등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수월하다. 꾸미의 효율성이다.

이런 단체방에는 해당 캠프의 공보담당 관계자와 기자들이 함께 한다. 후보가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텔레그램 마크맨방에 직접 메시지를 남기고 기자들과 대화를 스스럼없이 주고받아 화제가 됐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의 단체 대화방/카카오톡 화면 캡처
◇인간관계에 '거리'가 결정적…폐쇄·독점은 금물= 여기엔 '거리'에 따라 친밀감에 차이가 생기고, 친밀도가 높을수록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의 본성이 깔려 있다.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친밀거리'부터 사회적공적 거리까지 인간관계에서 거리가 갖는 의미를 간파했다. 나로부터 약 46cm(약 1.5피트)까지는 친밀한(intimate) 거리다. 그야말로 아주 친밀한 사이라야 이 선의 안쪽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이가 들어오면 당사자는 불편하다. 일반적인 4인짜리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한다면 옆에 나란히 앉은 사람과 이정도 거리가 된다.


46cm부터 1.2m까지는 '개인적(personal) 거리'로 일상 속 다양한 대화 상황에서 주로 관찰되는 거리다. 커피숍에서 주문할 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을 때 등이다. 그보다 멀리는 3.6m까지를 사회적(social) 거리, 7.6m까지를 공적(public) 또는 청중(audience) 거리로 본다.

차 한 잔이나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면 대개 친밀하거나 개인적 거리에 들어온다. 지근거리 즉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사는 공적 사적으로 가까워지기 쉽다. 오프라인 꾸미가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다. 이 거리 구분은 온라인 메신저 세계에도 적용된다. 단톡방이라는 꾸미에 함께 있으면 적어도 개인적, 사회적 거리 이내에 들어온 셈이다. 결국 꾸미 정치는 근접성이라는 관점에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꾸미'가 만능인 건 아니다. 일본에선 폭력조직 이름에 '꾸미'를 붙이기도 한다. 끼리끼리 모이는 문화가 개방성이나 소통 의지를 갖추지 못하면 금세 폐쇄적 조직이 된다. 특정 '꾸미' 내에서만 정보를 공유하면 배타적인 일이다. 정치인이라면 특정한 꾸미와 접촉이 잦을 경우 정보독점이나 왜곡 문제가 반드시 생기므로 주의해야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꾸미 형성은 자생적, 자연적인 일이지만 정치인이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되는 숙제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지지율 '0%' 김종인·정운찬·홍석현의 '대통령 꾸미'


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28일 오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긴급토론 '한국경제의 길을 묻다-김종인이 묻고 정운찬, 유승민이 답한다'에 참석해 토론을 하고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로 대표되는 김종인 의원과 '경제정의'를 내세우는 유승민 의원,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정운찬 이사장이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경제 정책과 관련한 공감대를 형성해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형식의 정치 연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017.2.28/뉴스1 <저작권자 &copy;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권에서는 지지율 0%, 대선 출마도 하지 않은 원로들의 대통령 꿈'꾸미'가 화제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의 조찬회동(3월 29일)을 두고 나온 말이다. 이들 모두 대선 출마설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각각 대선 출마 선언을 한 후 통합정부준비위원회를 꾸려 후보단일화를 이루고 이후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차례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앞서 김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지난 23일 먼저 만나 이와 관련한 구상을 먼저 공유하고 홍 전 회장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른바 '통합정부'를 통한 대권 도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조찬 회동을 통한 '대통령 꾸미'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당초 이들은 '통합정부'를 통한 '대통령 꾸미'에 유 후보와 안 후보는 물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선후보를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통합정부'에서 공동으로 정부를 꾸리자는 이들의 제안에 호응하는 이들이 없어 '꾸미' 규모가 단촐해졌다.

이들의 '대통령 꾸미'는 한마디로 대통령 자리 하나를 3~4명이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 전 총리는 최근 "공동정부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집단을 만들고 그중 하나를 후보로 내세운 후 당선이 되면 그분은 대표 대통령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중대한 의사결정을 같이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하나에) 머리가 넷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김 전 대표나 정 전 총리, 홍 전 회장 중 한 명이 유 후보나 안 후보 등 지지율이 높은 후보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이 되거나 혹은 지지율이 높은 안 후보를 지원해 대통령 당선을 도우면 대통령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설명이다. 마치 한 몸에 머리가 넷 달린 '메두사'같은 정치 구조를 연상케 한다.

김 전 대표는 지난달초 탈당 후 '제3지대' 구축을 위한 세 도모를 위해 다양한 정치권 인사들과 조찬 회동을 비롯한 광폭 행보를 벌였다. 개헌 연대를 위해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을 수차례 만나는가 하면 민주당 비문(비문재인)계 의원들과 국민의당 의원들과도 연일 조찬을 하면서 '식탁정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원론적 입장 확인에만 머물러 '밥만 먹고 다닌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정치인도 '뭉쳐야 뜬다' 계파별 소모임 활성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 공무원들 소모임이 확 줄었어요. 심지어 교사와 공무원과 언론인의 배우자가 낀 동네 소모임조차 해산하는 분위깁니다.”

서울 시내 한 식당 주인은 날씨가 풀리면 식당 예약이 꽉 차는데 올해는 작년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청탁금지법으로 부서 회식이나 소모임이 줄어 작년 동기에 비해 매출이 크게 감소해서다. 의사들에게 접대를 해온 제약사들도 의사를 포함한 소그룹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반면 정치인들 사이의 '정치 모임'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 모임은 단순히 의원끼리의 친목 도모나 정책연구 차원을 넘어 세력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쳐왔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 모임은 더 주목을 받는다. 특히 정치인들의 모임은 대선 전후에 선거 기여도 등에 따라 계파별로 모임이 세분화돼 왔다. 20대 국회에선 '협치'와 '소통'이 화두인 만큼 의원들의 정치 모임도 활발하다.

'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세가 크게 위축된 친박(친박근혜)계는 2012년 대선 이후 선거 기여도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소계파가 나뉘면서 '여의포럼' 등 소모임을 활발하게 운영해 왔다. 그러면서 친목 단체 형태의 소모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었던 유승민, 김세연 의원 등 소장·쇄신파 의원들의 '소장파 모임'을 만들고 세력 재편의 한 축을 형성했다. 이명박정부 출범 초창기에도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함께 내일로'와 같은 모임들이 봇물을 이뤘다.

각 정당별로 각종 소모임이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소모임이 가장 두각을 나타낸다. 민주당 내 대표적인 소모임은 비주류 의원들로 구성된 '민집모(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다. 현재 민집모에는 민주당에서 이종걸, 변재일, 이언주 등 10여명의 비문 진영 의원들이, 국민의당에서는 주승용, 김동철 의원과 문병호 최고위원 등 다수가 참여하고 있다. 민집모는 지난해 발전적 해체를 선언했지만 올해 조기 대선을 앞두고 '비문(비문재인) 연대' 흐름 속에서 다시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탈당을 계기로 '민집모'가 오찬 회동을 갖고 구체적인 연대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어 5일 민집모 소속인 이언주 민주당 의원이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 행을 결정했다.

20대 국회 민주당 내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발전적인 국회 운영을 위한 다양한 모임이 만들어졌다. 당내 4수생들의 모임으로 잘 알려진 '카라스키야'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최소 3번 이상의 낙선을 경험한 총선 당선자들끼리 모였다. 모임 이름은 파나마 출신 전설의 복싱 선수 '헥토르 카라스키야'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졌다. 이 모임에는 김부겸, 김영춘, 김두관, 김영호, 박재호, 전재수, 최인호 등 7명이 참여한다.

야당의 불모지에서 당선된 의원들이 만든 '험지 모임'도 있다. 이 모임에는 전현희(서울 강남을), 김병관(경기 성남시분당갑), 김병욱(경기 성남시분당을), 임종성(경기 광주시을), 박정(경기 파주시을), 황희(서울 양천갑), 박찬대(인천 연수갑), 김해영(부산 연제구) 의원 등 10여명의 의원으로 구성돼있다.

여야가 함께하는 '생생텃밭 모임'도 있다. 이 모임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의원 시절이던 2015년 50여명을 모아 결성됐다. 현재 모임의 간사는 농민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처음 들어온 김현권 민주당 의원, 3선 김용태 바른정당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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