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나이' 10~15년 달라"…잘못된 은퇴설계 초래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 2017.04.02 08:00

[행동재무학]<176>생체나이 몰라 노후자금 일찍 고갈되는 은퇴자들

편집자주 |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은퇴설계를 했는데...”

올 초 직장에서 은퇴한 60세의 P씨는 요즘 은퇴자금을 어떻게 지출해야 가장 안정적으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은퇴 초기에 너무 많은 자금을 지출하면 나중에 궁핍해질까봐 불안하고 반대로 너무 아끼면 다 쓰지도 못하고 죽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재무학에서는 최적의 은퇴자금 지출전략으로 ‘4% 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은퇴 후 연간 씀씀이를 은퇴자금의 4%로 한정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은퇴자금이 1억원이라면 은퇴 첫 해엔 1억원의 4%에 해당되는 400만원을 초과해서 지출하지 말고, 이듬해엔 남은 은퇴자금 9600만원의 4%인 384만원 이상을 쓰지 말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매년 은퇴자산의 4%를 한도로 전략적으로 지출하면 은퇴 후 30년 정도는 안정적으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재무학 이론은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은 주민등록 나이(chronological age)라도 생체나이(biological age)에 따라 은퇴 후 예상 잔존수명이 저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여러 의학 연구논문에 따르면 사람의 주민등록 나이는 생체나이와 최대 10~15년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요크대학의 모시 밀레브스키(Moshe Milevsky) 재무학 교수의 최근 연구논문(“Retirement Spending and Biological Age”)에 따르면, 60세 캐나다인의 경우 생체나이가 동일하다면 예상 잔존수명이 24.95년이지만, 생체나이가 다를 경우 예상 잔존수명이 최장 31.68년(생체나이 45세)에서 최단 4.31년(생체나이 95세)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참고삼아 위의 표에서 자신의 주민등록 나이와 생체나이를 체크보세요. 가령 80세의 노인의 경우 생체나이가 같다면 예상 잔존수명이 9.99년이지만, 생체나이가 65세로 젊다면 예상 잔존수명이 15.95년으로 늘어납니다. 반대로 생체나이가 95세로 더 늙었다면 예상 잔존수명이 4.03년으로 줄어듭니다.

결국 생체나이에 따라서 은퇴 후 잔존수명이 크게 차이가 나므로 생체나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잘못된 은퇴설계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60세의 P씨의 경우에도 만약 생체나이가 60세가 아니라 45세라면 은퇴 후 45년을 살게 됩니다. 그럴 경우 30년이 지난 후엔 은퇴자금이 바닥이 나서 남은 노후생활이 궁핍해지겠지요.

반대로 P씨의 생체나이가 75세라면 은퇴 후 15년 정도만 살기에 은퇴자금을 더 많이 지출해도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아둔 은퇴자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은퇴설계는 전적으로 주민등록 나이에 기초해 만들어졌습니다. 60세의 P씨도 생체나이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예상 잔존수명을 30년으로 잡고 은퇴설계를 세운 거지요.

그러나 주민등록 나이는 자신의 진짜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주민등록 나이에 기초해 은퇴설계를 할 경우 실제 수명과 일치하지 않아 노후자금이 조기에 고갈되거나 반대로 너무 과다하게 남을 가능성이 크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밀레브스키 교수는 주민등록 나이와 생체나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은퇴자금 지출전략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은퇴자를 위험 회피형과 위험 선호형으로 구분해서 각기 다른 은퇴자금 지출전략을 선보였습니다.


보통사람보다 씀씀이가 많은 위험 선호형의 은퇴자는 그 반대인 위험 회피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은퇴자금을 지출하는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위험 선호형인 60세 은퇴자의 경우 생체나이가 똑같다면 매년 4.798%씩 은퇴자산을 지출하면 됩니다. 위험 회피형이라면 은퇴자금 지출비율이 3.834%로 적습니다.

그런데 생체나이가 50세밖에 안 됐다면 매년 은퇴자금 지출비율을 4.379%로 줄여야 합니다. 예상 잔존수명이 24.95년에서 29.73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체나이가 70세라면 매년 지출비율을 5.579%로 늘여도 됩니다. 예상 잔존수명이 18.97년으로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한 번 자신의 위험 선호도(위험 선호형 vs 위험 회피형)에 따라 위의 표를 이용해 최적 은퇴자금 지출전략을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올바른 은퇴설계를 하기 위해선 자신의 생체나이를 정확히 아는 게 필요한데 그럼 어떻게 자신의 생체나이를 알 수 있을까요?

최근 의학계에선 생체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biomarker)를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합니다. 바이오마커는 혈액·체액 내에 특정 질환 여부나 상태를 나타내는 단백질·DNA 등의 지표 물질을 말합니다.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인체의 ‘노화시계’라고 밝혀진 텔로미어(telomere)라는 세포 내 물질의 기능을 연구한 의학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텔로미어는 세포 속에 있는 염색체의 양쪽 끝단에 있는 부분으로 세포의 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세포가 분열할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는데(=나이가 들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는데), 최근 수년간 텔로미어의 길이를 측정해 생체나이를 추정하려는 첨단 기술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젊을 때는 주민등록 나이와 생체나이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다가 나이가 들수록 그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생체나이를 정확히 아는 게 필요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IT(정보기술)와 웨어러블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보통사람들도 머지않아 자신의 생체나이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은퇴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체나이를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은퇴설계를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은퇴자들이 훨씬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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