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억’으로 ‘불안한 현재’를 사는 인생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7.04.01 06:10

[히스무비] ‘여자의 일생’…“인생은 생각만큼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현실의 믿음은 때론 미래의 잔혹한 배반으로 다가온다. 그걸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당하는 삶이 인간의 역사다. 수많은 굴곡의 삶에서도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오는 희망의 한순간을 체험하기도 하고, 행복한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불행은 엄습한다.

인간이 무지한 것은 바로 기억 때문이다. 행복한 기억 때문에 미래를 기다리고, 불행한 기억 때문에 미래를 거부한다.

두 기억이 섞일 때, 우리는 비로소 말한다. “인생은 생각만큼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모파상이 ‘여자의 일생’에서 맺은 결어처럼 말이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남작 가문의 외동딸 잔느. 20세가 되자 신부의 소개로 가난한 자작 줄리앙을 만난다. 부친의 도박을 갚기 위해 저택을 팔고 노르망디로 이사 온 줄리앙은 잔느를 아내로 맞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생각지 못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잔느는 기억을 매개로 현재를 수시로 ‘해석’한다. 어릴 때부터 같은 젖을 먹고 자란 하녀 로잘리가 남편의 불륜 상대라는 사실을 안 잔느는 “평생 당신만을 사랑해”라고 약속한 줄리앙과의 기억에 기대어,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민다. 옆집 백작의 부인과 정분이 났을 땐 “사실을 공개하라”는 신부의 단호한 조언도 수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가듯 떠난 아들을 원망하지 못하는 것도 행복했던 아들과의 추억 때문. 1만 프랑으로 시작해 10만 프랑이 넘는 돈을 요구할 때마다 팔아치운 농장만도 20개가량이다. 똑똑하고 기품이 넘쳤지만 외로웠던 한 여자의 일생은 좋은 한순간의 기억을 믿고 파괴되는 현재를 무심히 바라보는 선에서 갇혀있을 뿐이다.


19세기 고전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스테판 브리제 감독은 두 가지를 잃지 않았다. 모든 배경을 ‘잿빛’으로 채색해 ‘인생은 불행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앞세웠고, 원작처럼 시간을 순차적으로 배치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 삶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

스크린 비율도 고전주의 방식을 따랐다. 1:2.35 비율의 와이드 스크린 대신 전통적인 35mm 표준 규격인 1.33:1의 스크린을 택했다. 감독은 탈출구 없는 잔느의 불행한 인생이 비좁은 상자 안에 갇힌 느낌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상자 안에서 잔느가 만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노르망디의 산과 들, 바다다. 여자의 일생은 자연처럼 그렇게 의지를 시험하거나 운명을 거역하지 않은 채 내면에 침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나 소설의 원제는 ‘하나의 인생’이다. 우리네 인생이라고 다를까. 6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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