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동거차도 절벽의 恨, 여기서 가족이 기다렸다

머니투데이 동거차도(전남)=방윤영 기자 | 2017.03.26 15:06

사고해역 가장 가까운 곳 '통한의 기다림', 인양과정 573일 하루같이 지킨 유가족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절벽에 걸린 현수막.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2015년9월1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내걸었다. 이 현수막은 유가족들의 오랜 기다림에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사진=4.16가족협의회 제공
'가까이, 더 가까이…'

세월호 사고 해역을 좀 더 가까이서 보려는 마음이 유가족의 발걸음을 절벽까지 이끌었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산 중턱 바다와 맞닿은 절벽에는 말 못할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동거차도는 세월호 사고 해역과 약 2㎞ 떨어진 곳이다. 산 중턱에 올라서면 탁 트인 바다를, 세월호 인양 작업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유가족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바다와 맞닿은 절벽으로 간다. 산 중턱에서는 직선거리로 약 500m에 불과하지만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걸으면 15분은 족히 걸린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절벽으로 향하는 오솔길.(왼쪽) 숲길 중간중간에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리본을 이정표 삼아 걸으면 절벽으로 갈 수 있다./사진=방윤영 기자

오솔길은 아찔했다. 폭이 좁은 데다 흐릿해 발을 잘못 헛디디면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정도였다. 이 험한 숲길 곳곳에도 노란 추모 리본이 달려 있었다. 가족들이 한 걸음씩 걸으며 매단 리본이다.

노란 리본을 이정표 삼아 10분쯤 걷다 보면 평평한 길이 나 있다. 이 길 끝이 절벽이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서 바다와 맞닿은 절벽으로 향하는 길(왼쪽). 이 길 끝에 절벽이 있다. 절벽 끝에 매달린 돌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미지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빨간색 원 안)/사진=방윤영 기자

절벽에는 유가족들의 한(恨)이 서려 있었다.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 돌에는 흐릿하지만 '유미지'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가족들을 돕는 '삼촌'(자원봉사자) 임명우씨는 "단원고 2학년 1반 반장이었던 유미지양 덕분에 학생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며 "(학생들) 엄마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돌에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말했다.

유미지양은 세월호 참사 당시 "침착하자", "물이 차면 몸이 뜬다"며 친구들을 격려했다고 전해졌다. 많은 친구들을 살렸지만 유양은 끝내 세월호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


절벽을 타고 바다를 향해 더 내려가면 3.3~6.6㎡(1~2평) 남짓한 공간이 있다. 유가족들은 2015년 9월1일 이곳에 텐트를 치고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했다. 세월호 침몰 490일 만에 세월호 인양 작업이 시작되자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해양수산부가 중국 인양 업체 '상하이 샐비지' 최종 선정 이후 같은 해 8월19일 첫 수중 수색이 이뤄진 이후다.

당시 태풍으로 절벽 위 텐트는 이틀 만에 철수해야 했지만 대형 현수막은 그대로 남았다.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썼다. 혹시라도 중국 '상하이 샐비지' 관계자들이 볼 수 있을까 해서다. 이렇게라도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달 26일로 가족들의 '절벽 기다림'도 573일이다. 계절이 6번 바뀌는 동안 현수막은 바람에 찢기고 세월에 헤졌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절벽 아래 1~2평 남짓한 곳. 유가족들이 한때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봤다./사진=방윤영 기자

텐트는 없지만 아직도 유가족들은 이곳을 찾는다. 여름에는 무성히 자란 풀을 낫과 정글도(刀)로 베어 가며, 겨울에는 눈길을 헤쳐가며 갔다.

동거차도 절벽은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 이름 한명씩 부르다 한참을 울고 가는 통한의 장소가 됐다. 세월호가 하루빨리 인양되길 기원하는 기다림의 장소다.

세월호 인양 작업이 한창이었던 24일에도 유가족들은 이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면서다. 올 4월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에는 모든 인양·수습 작업이 완료돼 그 누구도 이 절벽을 찾지 않아도 되길 기대할 뿐이다.

3년 만에 세월호를 목포신항으로 보내고 있는 잔잔한 바다가 그나마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통한의 기다림이 이제야 작은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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