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식의 벡터]현대나 삼성에 대우조선 맡기라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 2017.03.23 05:00

편집자주 | 방향을 포함하여 생각해야 하는 물리량이 벡터다. 어떤 일이든 힘이나 양으로만 밀어붙인다고 되지는 않는다. 경제는 숫자이지만 방향이 필요하다.

대통령을 파면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사이 우리 경제에선 대우조선해양이라는 곪은 환부가 다시 터졌다. 전 정권이 이른바 '서별관 회의'에서 민심을 위해 무조건 살리라 지시했다는, 그 체제 사람-홍기택의 증언이 있는 유물이다.

작년에 그래서 4조2000억원을 마지막이라는 전제 조건으로 줬는데 5개월 여 만에 마이너스 통장을 거덜냈다. 이제 다시 3조~6조원을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지난해 연명을 결정한 것도 다분히 정치논리였다. 사실 이 회사는 2008년에 다시 민간에 돌려줬어야 한다. 포스코와 GS, 한화, 두산 등이 서로 달라고 다투던 매물이다. 매각가치가 7조원에 달했는데 복지부동한 산업은행이 여러 핑계와 논리 싸움을 벌이다가 거래를 그르쳤다.

이듬해 금융위기가 터졌고 10년간 정부와 산업은행, 그리고 아부와 뇌물로 결탁한 구속된 경영자들이 회사 실체를 가리고 호의호식하면서 5조원 이상을 분식회계로 날렸다. 그 후 구원투수처럼 투입한 현 사장은 작년에 4조원만 주면 신규 수주해서 살려놓겠다 했는데 결과론적으로 거짓이 됐다.

경제 관료와 산업은행은 국익을 거론하며 추가 지원을 합리화한다. 그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대우조선이 이미 수주한 선박 건조 책임이 그를 보증해준 수출입은행 등에 얽혀 있어 최대 57조원 규모의 더 큰 경제문제를 일으킬 뇌관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그런 맥락으로 우리는 감옥에 간 경영자들이 어떻게 수주한 지도 모르는 배들에 사슬로 묶여있다. 테이블 밑에서 수수료를 챙겨 이른바 명품 스위스 시계를 사고 그를 뇌물로 사용한 범죄의 뒷감당을 바로 내 호주머니에서 책임지는 아이러니를 안게 된 것이다. 이 선박들 중 상당수는 저가 수주로 이어졌기에 대우조선이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가 나는 것도 있다.

감정적으로 화가 나지만 그렇더라도 함부로 퇴출을 얘기할 순 없다. 당장의 혈세 외에도 직접적으로 2만명, 간접적으로 거제와 경남권 경제가 걸려서다. 대안 없이 경영층 아닌 근로자나 협력업체, 지역에 막연히 책임을 떠넘겨선 곤란하다.


대선주자들에게 물어봐도 소용없다. 당장 자기 밑천이 들어가지 않는데 경남 표심과 직결된 이 문제를 누가 죽이라 하겠나. 지금은 살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다툴 때가 아니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누가 이를 맡게 할지가 중요하다.

현재 조선업 경기전망은 모호하다. 그리고 전망이 장밋빛이라 해도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다. 회사를 살리겠단 의지는 선하지만 비전문가들이 날뛰는 건 막아야 한다. 성과 낼 능력도 없으면서 국민들에 손을 뻗치는 자들은 도둑처럼 경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적 영역의 관리 성적은 이미 낙제 수준이다. 10년 넘는 세월과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그 수준을 확실히 증명했다. 기가 막히는 건 대우조선을 살리겠다는 현 경영층 핵심이 조선업과 무관했거나 그 필드에서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 바로 산업은행 낙하산이라는 것이다.

지금 대우조선에는 대타협 수준의 양보가 필요하다. 정부와 근로자, 시장 참여자와 국민이 한발씩 물러서지 않으면 모두 죽는 문제다. 해양플랜트 부문 같은 악성자산을 과감히 도려내고 이미 수주한 계약을 정밀 분석해 현대상선처럼 채무 재조정 효과를 내면서 국가적인 계약 공신력을 지켜낼 시스템과 인물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을 보면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미국은 시장을 활용해 GM을 살려냈고, 중국은 강한 카리스마로 철강산업을 통폐합해 경쟁력을 회복했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당장 '조선업의 스티브 잡스'를 찾아낼 수 없으니 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 살아남은 시장 참여자인 현대와 삼성에 3조원이든 6조원이든 어차피 들어갈 자원을 조건부 인센티브로 내걸고 대우조선 경영을 위탁하는 등의 파격적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우리도 외환위기에 '빅딜'을 하지 않았던가. 고통스럽지만 힘겨운, 무통주사보다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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