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찾은 서울 명동의 A화장품 매장은 그야말로 썰렁했다. 80~90%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인 고객은 아예 자취를 감췄고 내국인과 일본·동남아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매장을 방문했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어치씩 대량 구매하는 중국인 고객과 달리 특정 제품을 꼼꼼히 테스트한 뒤 1~2개 제품만 구매하는 고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월 평균 7억~8억원을 올리던 이 매장의 매출은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시작된 이후 20~30% 가까이 감소했다.
일본·동남아 관광객 대상 마케팅, '1+1 할인행사' 등을 진행하는 등 발 빠르게 매출을 관리한 이 매장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명동 일대에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매출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와 비교해 반토막 난 매장이 수두룩하다.
B화장품 매장 매니저는 "매장을 찾는 손님의 90% 이상이 중국 관광객이었는데 지금은 10%도 안 된다"며 "하루에 최소 1000만원은 팔아야 수지가 맞는데 요즘은 500만~600만원 매출 올리기도 버겁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중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겼을 때는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을 예측할 수 없으니 더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오후 4시 이후 명동 유네스코길과 중앙로에 노점상이 들어서면서 관광객들도 조금씩 모여들었다. 일본인을 비롯해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관광객이 부쩍 늘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 구경만 하고 나오거나 핸드크림·마스크팩 등 중저가 제품을 소량으로만 구매했다. 가방 한가득 '사재기'하던 유커들과는 소비 성향이 완전히 달랐다.
C화장품 매장 직원은 "한 번에 대량으로 구매하는 중국 관광객과 달리 일본, 동남아 관광객은 단품이나 소량 구매를 선호한다"며 "예전에는 10개, 20개씩 세트로 묶어 판매했는데 최근에는 단품으로 쪼개 팔고 있어 판매 속도가 더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장품 뿐 아니라 의류, 식당·노점상 등 명동 상권 대부분 매장 매출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인 손님을 응대하려고 채용했던 직원들을 내보낸 곳들도 많았다. D의류 매장 사장은 "이달 들어 최저 매출 기록을 매일 갱신하고 있다"며 "버티고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직원 3명을 줄였다"고 말했다.
어둠이 깔린 저녁 8시가 됐지만 명동 일대 주요 화장품·의류 브랜드 매장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기업 브랜드가 아닌 중소 브랜드, 먹거리 노점상 등의 매출 타격은 더 컸다. 한 먹거리 노점상 상인은 "작년에 비해 매출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시장 위축 불가피"…'포스트 차이나' 전략 마련 분주=명동상권 대표주자인 화장품 업계는 사드 보복 장기화에 따른 시장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현지 매출은 물론 유커로부터 나오던 국내 매출도 급감하면서 전체 시장 규모가 줄어들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각 업체 매출이 떨어지면 원료·용기·포장 등 각 생산과정에 얽혀있는 제조업계까지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마스크팩·마유크림·달팽이크림 등 중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제품에 주력하던 업체들은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며 "관광객들의 국적이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제품군 다양화 등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 브랜드숍 매장에는 동남아 고객들을 위해 '쿨링' 제품을 전면에 배치했다. 기능성 화장품을 선호하는 일본 고객들을 위한 제품들도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놨다. 또 다른 브랜드숍은 2012년 이후 중단했던 일본 고객 대상 프로모션을 5년만에 재개할 예정이다. 다음달말부터 5월초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황금 연휴인 '골든위크'를 맞아 맞춤형 상품과 이벤트를 준비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K뷰티' 대신 자국 제품이나 다른 글로벌 제품으로 눈을 돌릴 것"이라며 "사드 국면이 해결된다 해도 중화권 시장 내에서 'K뷰티'가 성장 탄력을 되찾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기업들이 자구책을 마련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