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화장 열풍…'문방구 초딩 화장품' 써보니

머니투데이 이슈팀 한지연 기자 | 2017.03.18 06:30

[보니!하니!]문구점용 립틴트 화끈거리고 냄새 거북…비인증 화장품 위생불량 위험

문구점에서 구입한 립 틴트/사진=해당 제품 홈페이지
초등학생들 사이에 화장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고학년 한 학급의 70%가 넘는 여학생들이 입술 색조화장의 일종인 틴트를 바르는 등 화장은 이미 초등학생 또래문화가 됐다. 실제로 대구의 모 초등학교는 화장 문화를 인정하고 학부모에게 ‘학생 화장 허용 동의서’를 발송해 생활지도에 반영하기도 했다. (관련기사☞[단독]초등학생 화장 열풍…'화장 동의서'를 아시나요?)

초등학생들이 화장하는 것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화장 제재가 현실적으로 힘든 만큼 건강하게 화장을 하고 잘 지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낫다는 의견과 피부가 약한 어린이들이 유해물질 노출 위험이 있는 화장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지적이 맞선다.

학부모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인증받지 않은 불량 화장품을 아이들이 쓰지 않을까 하는 점. 어른들이 사용하는 비싼 화장품을 살 만큼 충분한 용돈을 받지 않는 어린이들은 학교 앞 문구점에 파는 값 싼 화장품을 사는 경우가 많다. 기자가 직접 초등학생들이 문구점에서 사는 화장품을 사용해봤다.

◇직접 발라본 립 틴트의 '느낌적 느낌'
기자가 서울 동작구의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직접 구입한 립틴트는 색깔이 8가지나 됐다. 그 중 오렌지색을 골라 발라봤다. 직접 발라본 첫 느낌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곧바로 강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나쁜 냄새는 아니지만 기자가 평소 바르는 성인용 립스틱 보다 훨씬 강한 인공향료 냄새가 났다. 색깔 또한 입술 중앙을 따라 착색되듯 그려졌다. 시간이 지나자 입술이 조금 따갑기도 했다.

◇'초딩 화장품' 성분 분석해보니
찝찝한 느낌이 그저 기자의 느낌적 느낌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화장품 성분을 검색해주는 앱(애플리케이션)을 활용했다. 문구점에서 산 화장품의 성분에는 메칠파라벤, 피이지-60하이드로제네이티드캐스터오일, 카보머 트리에탄올아민, 향료, 적색2호, 적색 3호, 적색 40호 등이 들어 있었다.

먼저 '적색O호'는 인공 색소를 의미한다. 적색3호와 적색40호는 EWG등급(환경 시민단체의 성분 안정성 평가 데이터베이스에서 제시하는 성분 안전도 등급. 숫자가 높을수록 위험성이 높다.)이 3으로 중간등급이었다. 하지만 적색 2호의 경우 EWG등급에 등록조차 돼 있지 않았다. 인공 색소는 구순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메칠파라벤의 경우 EWG 4등급에 등록됐으며 접촉성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는 대표적 내분비 장애물질로 여겨져 점차 화장품에서 사용을 줄이고 있는 대표적 위험성분이다. 피이지-60하이드로제네이티드캐스터오일의 경우 EWG 3등급으로 섭취 시 간장과 신장 장애를 발생시킬 수 있는 알레르기 유발물질로 알려져 있다.

립틴트에 인공적 향을 주입하기 위한 향료는 무려 EWG 8등급으로 높은 위험도를 기록했다. 이는 향을 유발하는 모든 성분을 향료로 통칭해 표기하기에 실체를 알기가 힘들고, 두통, 현기증, 발진과 기관지 자극을 유발한다고 전해진다.


트리에탄올아민은 계면활성제의 한가지인데 EWG 5등급으로 중간 위험도를 기록했지만, 눈 관련 질환과 모발 및 피부 건조증을 일으키고 장기간에 걸쳐 체내 축적되면 독성물질로 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체험기를 써야 하더라도 내 몸 또한 소중한 기자는 얼른 클렌징 티슈로 입술을 닦아냈다.

◇저렴한 화장품 불안감 더 키워…"잘 바르고 잘 지울 수 있게 지도해야"
학교 앞에서 만난 일부 초등생들은 불량 화장품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장품을 실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른용 화장품을 살 구매력이 없는 초등생들이 화장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저렴한 문구점용 화장품을 사는 수 밖에 없었다. 초등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요즘 초등학생들은 문구점에서 립 틴트를 산다. 화장품이 3000원이 채 되지 않아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500~2000원대 저가 화장품이 진열된 생활용품 매장/사진=한지연기자
실제 기자가 돌아본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립 틴트는 3000원이 채 되지 않았고, 동네 한 대형 생활용품 할인매장에서는 아이라이너(눈꺼풀 점막을 채워 눈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해주는 눈 화장품), 아이브로우(눈썹 그리는 제품), 마스카라 등을 각 500~20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화장품 안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초등생들은 단 돈 300원에 살 수 있는 컴퓨터용 수성 싸인펜으로 아이라인을 그리거나, 미술 시간에 사용하는 물감으로 입술을 칠하기도 한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화장을 막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량 화장품이 아니라 인증받은 화장품으로 건강하게 화장하고, 잘 지우는 법 등 올바른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량 화장품의 경우 인증받지 않아 비위생적일 수 있고 피부가 약한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며 "고가의 질좋은 어른용 화장품을 쓰더라도 파라벤 등과 같은 화학물질은 유방암 등 호르몬성 질환 위험이 있고, 여자 아이들의 성 조숙증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화장하는 초등생이 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화장품 안전사용 7계명을 담은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사용법’ 책자를 배포했다. 오는 9월부터는 '어린이 화장품'이 공식 출시된다. 만 13세 이하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 화장품 종류에는 로션, 크림, 오일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어린이용 화장품 성분에도 제한이 생기고, 표시기준은 성인용보다 엄격해진다. 어린이용 화장품에 색조, 눈 화장용 제품 등까지 포함할지는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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