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게 끝은 아니다. 280만건 이상의 '살아 있는' 약관 처리 문제가 남았다. 보험사들은 앞으로 계약자가 자살하면 일반 사망보험금의 최대 3배까지 줘야 한다. "보험이 자살을 조장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단순한 약관 오류로 보험사들이 앞으로 수조원대의 보험금 지급 부담을 안아야 하는 것도 가혹하다.
<b>◇자살공화국의 또 다른 비극 자살보험금</b>=금감원은 이날 제재심을 열어 삼성·한화생명에 대해 각각 ‘기관 경고’와 최고경영자(CEO) ‘주의적 경고’ 제재를 내렸다. 지난달 23일 ‘2개월~3개월 일부 영업정지’와 CEO ‘문책경고’에 비해 징계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 뒤늦게나마 보험금 전액 지급을 결정한 점을 고려했다. 이로써 2014년 금감원의 ING생명 제재 이후 3년여간 끌어온 자살보험금 사태는 종결됐다.
이제부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이번 사태로 “자살을 하면 사망보험금이 최대 3배가 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암 등 중대한 질병에 걸린 환자나 생활고를 겪는 사람이 가족에게 거액의 보험금을 남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이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4개국 중 자살률 1위다. 일반 사망이나 사고사를 자살로 위장하는 보험사기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물론 “보험금을 더 주면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객관적인 통계는 아직 없다. 다만 보험 가입 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면책기간 2년이 지나면 자살로 인한 보험금 청구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는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면책기간 중 자살률)은 0.74%에 불과한데 면책기간이 지난 3년차 이후에는 5.04%로 크게 뛰었다.
자살시 재해사망보험금까지 지불해야 하는 보험 계약은 280만건이 넘는다. 보험업계 추정에 따르면 잔여 계약, 지급 보험금, 자살률 통계를 감안할 때 연간 930억원 가량의 자살보험금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10년 동안 자살보험금만 1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살은 명백히 재해가 아닌데도 단순한 약관 오류로 보험사가 1조원에 달하는 보험금 지급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것도 가혹한 면이 있다.
<b>◇유례없는 대규모 계약 갈아타기 이뤄지나</b>=금감원은 최근 생명보험협회를 통해 잔여계약 처리 방안을 다각도로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선 보험업법 131조의 약관변경 명령권을 발동해 금융위원회가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있는 오류 문구를 삭제할 수는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러나 “약관 문구가 계약자에게 현저하게 불리하다고 볼 수 없고 자살보험금이 자살을 조장한다는 객관적인 통계가 없다”며 명령권 발동에 난색을 보였다.
계약자가 다른 계약으로 갈아타는 ‘승환계약’도 해법으로 제시된다. 자살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일반 사망보험금을 더 주거나 보험료를 깎아주는 식으로 계약을 바꾸는 것이다. 승환계약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왔지만 금감원이 사전에 승인하면 가능하다. 금감원도 “계약자에게 유리하다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작 보험사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일단 자살보험을 판매한 기간이 보험사별로 제각각이다. 교보생명의 경우 이미 보험료 납입이 끝난 계약이 대부분이다. 중대질병 등으로 자살 가능성이 높은 계약자는 갈아타지 않고 자살 가능성이 낮은 계약자만 갈아타는 역선택이 우려된다. 효과는 없고 보험사 비용 부담만 늘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살아있는 자살보험 계약에 대해서는 소비자단체와 금융당국, 보험업계간 진솔한 의견 교환이 있어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보험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을 막으려면 해결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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