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속에 들어와 있는 듯”…세계대전을 보는 새로운 시각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7.03.11 05:26

[따끈따끈 새책] ‘제2차 세계대전’…미세한 사건 기록에 드라마같은 전개 ‘일품’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듯하나,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이 제2차 세계대전이다. 많은 국가 간 정치·경제적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에 이 거대한 사건을 조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면 누락하거나 편파적 해석이었거나.

전쟁 역사가인 앤터니 비버가 1288쪽을 할애한 이 전쟁사에서 주목한 건 사건의 본질과 인간의 속성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작전 개시 암호와 함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7년간 6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비극이었다는 게 그간의 보편적 관점이었다.

비버는 그러나 대전의 시작을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보지 않고 한 달 전에 만주에서 벌어진 소련과 일본의 전투로 본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친 유럽이 아닌, 중국, 일본, 소련 간의 분쟁이 벌어진 극동지역에 우선 눈길을 준 것은 이 책의 가장 차별화한 요소다. 난징 대학살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일본의 중국 침략 이후의 사건이 전쟁의 미래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타심이 빛나는 인간의 희생과 이성을 거세한 인간의 야만성이 공존하는 것도 잔혹한 전쟁이 낳은 빛과 그림자다. 소련 비밀경찰은 수십만 명에 이르는 자국 국민을 사살했고, 일본군은 중국 여인들을 총검으로 난자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극심한 기아와 광기로 자신의 아이들을 잡아먹었으며 러시아 군인들은 베를린을 ‘해방’한 이후 8세부터 80세에 이르는 모든 여자를 강간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용기를 넘은 이타적 행동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평범한 독일인이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거나 어떤 이들은 종교·계급을 뛰어넘어 모르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도덕은 전쟁에서 ‘악덕’의 선행화에 쉽게 설득된다. 독일군이 유대인 죄수들에게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시체를 정어리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리라고 명령하는 순간, 시키는 자와 부름을 받은 자 모두에게 도덕은 일의 ‘효율’ 앞에 효력을 상실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우리가 배운 놀라운 일은 사람의 마음이 바뀌자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는 미국 물리학자 이시도어 라비의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순간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하고 자국 영토 방어력이 뛰어난 프랑스가 독일에 쉽게 무너진 까닭을 ‘어이없는 행위’에서 찾아낸 것도 이 책이 주는 탁월한 재미다.

프랑스는 견고한 수비가 뛰어났지만, 공격에 대한 반응이 느리다는 치명적 결점을 안고 있었다. 최전방을 방문한 로이터 통신 기자가 프랑스 병사들에게 “독일군의 움직임이 뚜렷한데, 왜 쏘지 않느냐”고 물었다.

병사들은 “저들은 나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쏘면, 저들도 발포할 겁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방어 진지 구축을 제외하고 프랑스군은 훈련은커녕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하거나 술을 마시고 편지를 썼다. 독일군이 국경 건너편까지 건너온 상황에서도 프랑스군은 “나는 기다리겠다”는 노래를 조심스럽게 듣고만 있었다.

저자는 1938년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양경종이라는 한국인의 동태를 이야기의 실마리로 삼았다. 양씨는 만주에 처음 배치됐다가 소련군에 강제 복무한 뒤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이 무시무시한 역사적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가를 양씨의 사례가 강렬하게 각인시키고 있다”며 “전쟁이라는 대량학살 분위기에서 받는 개인의 고통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사건을 제대로 통찰할 수 있는 역사서이면서 소설을 읽듯 개인의 스토리 전개가 뛰어난 서사시라는 점에서 1200여 페이지가 술술 읽힌다.

◇제2차 세계대전=앤터니 비버 지음. 김규태·박리라 옮김. 글항아리 펴냄. 1288쪽/5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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