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육체의 덫에서 해방을 꿈꾸다

머니투데이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2017.04.07 04:56

<1> 트랜스휴먼의 탄생-진화론이 모든 것을 바꾸다…인간을 초월한 '미래 인간'의 출현

<그림1> 1860년에 진화론을 놓고 논쟁을 했던 윌버포스 주교와 “다윈의 불독” 토마스 헉슬리.
2004년에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라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잡지에서 저명한 지식인들에게 “인류의 복지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생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여러 답이 나왔지만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이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라는 답을 했다.

후쿠야마에 의하면 트랜스휴머니즘 이념과 운동은 인간을 인간의 생물학적인 조건에서 해방하려는 급진적인 운동이다. 과거의 노예 해방운동, 노동 해방운동, 여성 해방운동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혁명적인 파급효과를 가진 운동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해방운동이 인간의 특정한 소수자의 해방에 국한돼 있었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은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며 따라서 미래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트랜스휴먼은 자연적인 진화나 기술적·의학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지금의 인간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갖추게 된 인간을 말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이런 트랜스휴먼의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한 운동이나 이를 지향하는 이념을 의미한다.

지금의 인간을 초월하는 트랜스휴먼이라는 생각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런 생각이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발전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며 그 단초가 마련된 것도 15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신이 모든 생명체를 만들었다. 인간과 신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었고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인간은 더는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들도 모든 생명체가 그 변치 않는 본질을 생명체 내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결합해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변치 않는 본질을 가지면서 위계를 이루고 있다는 ‘존재의 대연쇄’(Great Chain of Being) 이론이 등장했다.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이 위계를 이루면서 지구에 존재하며 각각의 존재들은 자기의 위치에서 변하지 않는 고유한 본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생각은 19세기 중엽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종의 기원’(1859년)이 출판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고정된 생명체 종들이 오랜 동안의 진화를 통해 서서히 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기작으로 ‘생존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을 제시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명체의 세상에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고정된 본질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생명체는 특정한 환경 속에서, 당시 존재하던 다른 종들과의 경쟁이라는 우연한 조건들의 영향을 받으며 우연히 진화한 것이었다. 진화는 이렇게 우연히 이뤄지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고등한 생명체를 낳기 위해 진행된 것도 아니었다. 비록 ‘종의 기원’이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논의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도 급진적인 함의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했다.

논란은 ‘인간이 과거에 무엇이었는가’라는 문제부터 시작했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신학자들은 진화론이 인간에 대해서 갖는 함의가 매우 위험하고 불경스럽다며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중에서도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1805~1873) 주교와 ‘다윈의 불독’ 토머스 헉슬리(Thomas Huxley, 1825~1895) 사이의 논쟁은 잘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인간을 신이 자신의 모습을 따라서 만든 존재라고 생각하던 종교계에서는 유인원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갈래로 떨어져나온 존재가 인간이라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종교 대 과학 논쟁’에서 중요한 이슈다.

더 이상 진화 없다? '호모 사피엔스'의 변화는 계속

과학·의학 발전으로 '육신 한계 넘는 변화' 꿈꿔
신인류의 능력과 형태, 상상 초월할 듯

<그림2> 다윈은 <인간의 유래>를 출판한 뒤에 비판자들에 의해서 원숭이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진화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책이 급하게 저술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미나 벌처럼 사회를 이루고 사는 종에게서 보이는 희생과 협력을 진화의 메커니즘(mechanism)인 생존경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개미나 벌 중에는 새끼를 낳지 않고 다른 벌이 낳은 새끼를 돌보기만 하다가 죽는 개체가 유독 많았는데 이런 현상은 다른 개체들과 경쟁해서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진화의 생존경쟁 메커니즘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윈은 몇 년 동안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희생을 통한 협력이 희생하는 개체에는 불행일 수 있지만 집단 전체의 진화에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식으로 해결했다. 자기를 희생해서 협력하는 개체가 많은 종이 그렇지 않은 종에 비해 집단적인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열악한 인간은 유독 협동을 많이 하는 종이었다. 이런 통찰을 인간에게 적용해보면 생존을 위한 협동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이었고 이 공감능력이 진화해서 이타심이나 자비심 같은 인간의 독특한 본성이 만들어졌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다윈은 ‘인간의 유래’(1871년)를 집필했다. ‘종의 기원’이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아무런 얘기를 담지 않은 반면 ‘인간의 유래’는 인간의 ‘기원’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었다. 다윈은 여기에서 인간의 공감능력, 협동심, 희생 같은 인간의 본성도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다윈은 동물도 이런 본성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종의 기원’이 불러일으킨 파문이 미처 잦아지기도 전에 또다른 엄청난 파문이 유럽 지성계를 강타했다.

다윈의 관심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밝힐 수 있는 인간의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지만 인간이 진화한 존재라면, 그리고 그 진화가 궁극적으로 인간을 만들기 위한 목적론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다른 생명체들처럼 인간 역시 지금도 진화하고 있고 미래에도 진화할 존재일 수 있었다. 인간은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 돼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이 주제는 매우 논쟁적인 주제였고 다윈의 진화론을 수용한 사람들 사이에도 이견이 있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진화를 받아들였지만 인간이 언어를 발명하고 사회를 만들어서 문화를 발전시킨 뒤에는 인간에게는 더는 생물학적인 진화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서는 생물학적인 진화가 끝났다고 간주했다.

다윈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고귀한 정신과 동물적인 육체가 공존한다’는 역설적인 서술로 인간의 유래를 마무리지었다. “우리는 고귀한 특성, 가장 비천한 것을 불쌍히 여기는 공감 능력, 다른 인간은 물론 가장 낮은 살아있는 존재까지 확장되는 자비심, 태양계의 운동과 구성을 꿰뚫는 신과 같은 지성을 가진 인간이, 이런 모든 고양된 힘에도 그의 육체의 틀에 비천한 기원의 지울 수 없는 낙인을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윈에게는 신에게 근접하는 지성을 가진 인간이 지울 수 없는 비천한 동물성으로 점철된 육체를 가진 존재였다.

다윈은 인간의 육체를 비천하고 극복할 수 없는 것, 즉 과거 진화의 ‘낙인’으로 간주했다. 그렇지만 미래의 몇 만 년에서 몇 백만 년에 걸쳐서 인간의 진화가 계속 일어난다면 인간의 육체가 눈에 띄게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윈의 후계자 중 일부는 인간이 미래의 변화된 환경에 맞게 진화해서 지금과는 다른 육체를 갖는 것을 상상했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인간이 신에 근접하는 지성을 사용해서 아예 지금의 육체를 변형시켜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새로운 육체를 선사할 수도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점진적인 진화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과거가 바뀌었고 인간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렸다. 과거 인간은 원숭이와 같은 조상을 공유한 존재였다면 미래의 인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형태와 능력을 가진 존재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아이디어인 트랜스휴먼이라는 생각은 이렇게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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