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틱, 택, 톡] 시간촉진룰..여유없는 여가 촉진

스타뉴스 김재동 기자 | 2017.03.04 09:00
지난달 22일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고의 4구시 공을 던지지 않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따라 올시즌부터 메이저리그에선 고의4구 상황시 덕아웃의 감독이 수신호하면 투수는 공을 던지지 않고, 상대타자는 바로 1루로 걸어가게 된다.

이틀후인 24일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오는 6월 열리는 브리티시 아마추어 골프대회 예선부터 준비된 선수가 먼저 공을 치는 규칙, 일명 '레디 골프(Ready Golf)'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레디 골프’룰이란 종전 티샷 이후 홀컵에서 멀리 떨어진 선수부터 공을 치도록 돼있던 골프룰 대신 준비된 선수가 먼저 공을 치는 규칙을 의미한다.

MLB 사무국은 긴 경기시간이 미국내 야구의 인기하향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하며 다양한 시간촉진룰을 고민해왔고 고의4구 투구를 폐지할 경우 경기 시간을 약 1분 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ESPN은 지난해 메이저리그 총 2427경기에서 932개의 고의사구가 나와 2.6경기당 1개꼴을 기록했다며 “이번 조치로 경기시간이 단축되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동안 고의 4구는 투수가 볼 4개를 반드시 던져야 성립했다. 그리고 이 공 4개 중에 폭투, 포일, 보크등 다양한 의외의 장면이 심심찮게 나오기도 했다. 가령 1982년 9월 세계야구선수권 일본과의 결승전서 나온 그 유명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같은 명장면이나 2013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서 보는 이들을 경악케한 두산 홍상삼의 고의사구 폭투같은 장면들이 선사하는 의외성은 야구의 또다른 재미였다.

야구 규칙 10.16 (b)에 따르면 '투수가 볼넷이 결정되는 공을 스트라이크 존에 던지지 않고 고의적으로 포수석 밖에 서 있는 포수에게 투구할 때는 고의4구를 기록한다'고 돼있다. 앞의 볼 3개는 어찌 됐건 간에, 마지막으로 던진 볼을 포수가 발을 빼서 서서 받으면 고의사구로 기록된다는 의미다. 때문에 세칭 ‘어렵게 간다’는 표현처럼 포수가 승부하는 척 캐처박스에 앉아있고 투수는 볼3개를 코너코너 빠지게 던짐으로써 타자를 유인해 보려고 노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MLB사무국이 고의사구를 이렇게 알기쉽게 정돈함으로써 메이저리그에서는 더 이상 그런 다양한 플레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레디 골프’규정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R&A 측이 실례로 든 것이 지난해 8월 아일랜드에서 열린 ‘아이리시 클로즈 챔피언십 대회’다. 당시 1라운드는 강풍으로 인해 18홀 평균 시간이 5시간 15분이나 걸렸다. 그리고 '레디 골프'룰을 도입한 2라운드는 4시간 30분만에 끝낼 수 있었다.

마틴 슬럼버스 R&A 회장은 “시간 단축은 골프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단언하면서 “제이슨 데이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경기시간 단축에 동참해야 한다”고 슬로플레이어 제이슨 데이를 콕집어 언급하기도 했다. 시간단축의 부담감이 제이슨 데이의 플레이를 위축시키지나 않을지 우려도 든다. '신중한 것은 느린 것이 아니다'는 타이거 우즈의 발언도 곱씹어볼만 하고.

설계되지않은 의외성으로 인하여 스포츠는 각본없는 드라마로 각광받아왔다. MLB도 R&A도 심사숙고 끝에 룰을 개정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단체가 도입한 시간촉진룰은 어쩐지 스포츠엔 어울리지않는 각본처럼 느껴져 씁쓸하다.

'투구 없는 고의4구'에 대해 KBO관계자는 “야구적인 요소와 충돌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아직은 전혀 검토하고있지 않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공4개가 만들어낼 의외성도 야구의 중요한 부분이란 생각이다. 아울러 여가를 즐기면서 그 정도의 여유조차 용납못한다는 것은 많이 각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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