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복' 23년 투자한 기업 신뢰 저버린 중국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박진영 기자 | 2017.03.02 04:10

국가적 결정 사안 민간 기업에 책임 전가…재계 "누가 중국 투자 나서겠나"

31일 중국 랴오닝성 션양시에 개장한 롯데백화점 중국 5호점에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왼쪽에서 여덟번째)과 롯데백화점 이원준 사장(왼쪽에서 여섯번째)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장기간 중국 정부를 믿고 투자를 해온 기업들을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누가 중국에 장기 투자를 하겠습니까"(한 중국 전문가)
"롯데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 중국 정부가 보복 조치에 나선다면 비겁한 일이다"(재계 관계자)

국방부와 롯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 교환 결정 후 노골적인 보복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해 '해도 너무 한다'는재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 차원의 의사결정 사안인데도 오랫동안 중국 정부를 믿고 투자해온 민간 기업들에 책임을 묻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내 반중 감정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켜 국제 사회의 외면을 받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부지 교환 결정으로 사드 배치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은 숨죽이며 중국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해친다며 사드 한반도 배치에 반대해온 중국이 언론 등을 앞세워 강도 높은 보복 조치를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롯데 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매 운동을 부추기거나, 우리 기업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세무조사와 소방 점검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보복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한국 기업들은 큰 피해가 불가피하다. 중국에 진출한 한 화장품업체의 임원은 "자금력과 브랜드 파워가 약한 중소업체의 경우 매출의 70~80%가 중국에 집중돼 있어 (보복 조치가 본격화될 경우) 줄줄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후 우리 기업들은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말 롯데그룹 계열사 현지법인에 대한 동시다발적 세무조사를 진행했고, 백화점과 마트 등 사업장에 대해서도 불시 소방, 위생 점검을 실시했다. 롯데그룹이 중국 선양에 3조원을 들여 추진 중인 '롯데타운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인 롯데월드(테마파크) 조성 공사도 지난해 말 소방 점검 후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한국산 화장품에 대한 검열이 강화됐고, 현대차의 리콜 결정도 두 차례나 이뤄졌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중국 자동차 배터리업계 모범기준이 갑자기 바뀌면서 상당기간 중국내 납품이 어려운 처지다. 한국행 전세기의 취항이 불허되는가 하면 '한한령(한류 제한)'으로 한류 콘텐츠와 공연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재계에선 국가 차원의 의사결정을 두고 민간 기업에 책임을 물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은 정부의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라며 "부지를 교환할 수 밖에 없는 롯데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 정부를 믿고 오랫동안 중국 투자를 해온 기업들을 단숨에 적으로 돌려세우는 것은 중국 경제에 대한 신뢰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롯데는 1994년부터 23년 동안 약 10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했다. 롯데제과,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 22개 계열사가 진출해 120여개 사업장, 2만6000여명의 임직원을 두고 있다. 중국 동북 지역 경제가 어려울 때 3조원 이상을 들여 선양 지역 '롯데 타운' 투자에 나섰고, 중국 정부의 내륙 투자 촉진 정책에 호응해 롯데칠성이 허난성 투자에 나서기도 했다. 롯데는 중국 사업에서 상당 규모의 누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에서 외자가 급격히 빠져나가는 추세인데 기업 정책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면 이런 흐름이 가속화될 수 있다"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 정경 분리 원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던 것처럼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맞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미국 정부나 기업에 대해선 보복 조치를 못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부담스러워서 한국 기업들만 제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이 중국 보복 조치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더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중국 사업의 피해를 무릅쓰고 부지 교환을 승인한 것은 순수하게 기업 경영측면에서 본다면 배임에 해당한다"며 "사드 배치를 적극 추진한 한국과 미국 정부에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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