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오너 공백이 불러올 삼성의 변화

머니투데이 송기용 증권부장 | 2017.02.22 04:3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으로 한국 최대 대기업의 지휘자가 사라졌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촉진해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사설에서 이 부회장 구속이 삼성에게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호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삼성 전체를 총괄하지 않을 경우 삼성의 경영이 더 투명해진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창사 79년 만에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자 언론도 바빠졌다. 특히 외신은 '정경유착' '부패고리' 등 자극적 용어를 써가면서 삼성과 한국 경제를 깎아내리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잘 걸렸다'는 조롱 분위기도 읽힌다.

독설 수준의 평론으로 혐한(嫌韓) 언론으로도 불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빠질리 없다. FT는 '삼성 체포가 한국에 기회'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 차기 대통령이 정경유착을 뿌리 뽑을 경우 한국과 삼성은 과거보다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유죄로 밝혀질 경우 법정 최고형을 받아야 한다"는 주제넘은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 부회장 구속과 관련, 브랜드 가치 하락 가능성 등을 지적하면서도 제조업 최강자 삼성전자의 실력을 인정하는지 실적에 미칠 영향은 낮다는 것이 외신 반응이다. 상당수 국내 전문가도 동의한다. 한 증권사 사장은 "삼성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탄탄하기 때문에 오너 공백 사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시장 반응을 보여주는 주가는 큰 흔들림이 없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17일 삼성전자 주가는 0.42% 하락한 189만3000원에 마감했다. 개장 초 흔들렸지만 외국인 매수로 낙폭을 줄였다. 삼성전자는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며 지난달 기록한 사상 최고가 200만원을 넘보고 있다.

오너 부재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실적이 충분히 상쇄한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50조를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종전 최고기록인 2013년 36조7850억원보다 약 40% 높은 수치다.


하지만 삼성이 지금과 같은 절대강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 실적 면에서 반도체 호황이 올 하반기에 끝나고 공급 과잉 구도로 바뀔 수 있다는 불길한 전망이 퍼지고 있다. 삼성을 갤럭시 노트7 단종사태라는 수렁에서 건져낸 게 반도체인데, 기대와 달리 반짝 호황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오너 공백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삼성은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져 온 오너 경영체제가 뒷받침해온 기업"이라며 "이 회장이 장기간 병석에 있고, 이 부회장마저 구속된 상태에서는 그룹 지배구조 재편이나 인수합병(M&A) 등의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LCD, 2차전지 등 길게는 10여 년간 수백억 달러의 천문학적 자금 투입을 결정해온 오너 일가 공백을 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집요하게 삼성을 공격해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등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배당'을 마음껏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의 50%를 주주환원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보다 더 큰 몫을 내놔야 할지 모른다.

"이 부회장 공백은 삼성 주주들에게는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WSJ 사설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기대를 엿볼 수 있다. 투자보다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삼성의 출현, 국가 경제에는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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