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일반 투자자들이 위험을 침소봉대해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살려둔 기업이 치러야 할 대가라는 지적도 불거진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 대우조선 경영진과 채권단은 채권 투자자와 일부 언론이 위험을 과대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대우조선이 3년 전인 2014년 4월 21일에 발행한 일반 회사채 '대우조선해양 6-1'의 상환 여부다. 이 회사채는 표면금리가 3.369%에 불과하지만 발행액이 만기상환 기준 4400억원 규모인지라 대우조선이 올해 4월 21일 만기에 다 상환하지 못할 경우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을 얻는다.
채권 투자자들은 사실 정부의 지원 여부를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여기고 베팅게임을 즐긴 셈이다. 7500원에 수억원 어치의 물량을 거둬들여 지난해 말 9600원에 보유구좌를 모두 정리해 석 달여 만에 약 30%의 수익을 낸 증권사 지점장과 고객이 속출했다.
거래 관계자는 "정부가 설마 대우조선을 죽이겠느냐는 확신에 베팅해서 수익을 거둔 것"이라며 "거제도와 경남지역의 표심을 (정치권이) 의식할 수밖에 없기에 지원책이 나올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치고 빠진 투자자가 있는가 하면 만기 수익률을 제외하고 약 9700원까지 오른 이 채권을 두고 입맛을 다시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지난 1월 갑자기 한 언론에서 4월 만기 회사채 상환이 어렵다는 기사가 나왔다. 채권단이 베팅 세력의 수익을 탐탁지 않게 보고 만기연장과 고통분담을 요구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곧바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이 주장의 사실 유무와 관계없이 해당 채권은 이튿날인 25일 장중에 800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최악의 시나리오와 법정관리라는 단어가 나타나자 잠재 리스크가 불거졌고 채권 투매가 이뤄진 것이다. 이날 대우조선 6-1의 채권 거래량은 약 300억원 어치에 달했다.
◇정말 대마불사일까…한 달 8000억 유동성 필요=투기세력과 일부 언론이 4월을 타깃으로 대우조선을 흔들면서 일부는 이득을 얻었겠지만 이 조선사의 회생 가능성은 그 이상으로 악화됐다.
일단 경제논리로 설득되지 않는 이 대형 조선사를 억지로 살려놓은 채권단은 끌려가는 입장이다. 4400억원의 채권 상환액을 만기 연장하는 것은 일단 불가능에 가깝다. 채권 투자자들이 은행이나 보험,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명의 일반인들로 구성된 터라 '헤어컷(채무탕감)'을 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4월 만기의 4400억원은 사실 큰 그림에서 보면 지엽적인 문제다. 이 정도의 캐쉬 크런치(유동성 과부족)는 대우조선이 지난 2~3년간 상시적으로 겪어온 문제이기 때문. 그러나 4월에 무슨 이유로든 대우조선해양 6-1의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채권 투자자 중 단 한 명이라도 법원에 파산신청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급해지는 것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채권단이다.
상법과 회사법 등 계약법상 일반 채권의 디폴트가 발생하면 곧바로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이 가진 RG(선박 건조 선수금 지급보증) 계약에 문제가 생긴다. 대우조선의 기존 수주량이 100억 달러를 상회한다는 걸 감안하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10조원 이상의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이 경우 수출입은행은 스스로의 존망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대우조선은 4월 만기 채권을 어떤 방법으로든 상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대우조선이나 산업은행이 제시한 대로 이 정도 수준의 채무상환은 헤비테일 방식의 선수금을 다소 앞당겨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조족지혈의 문제일 수 있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에도 5300억원을 미리 당겨서 CP(기업어음)를 상환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수주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유동성 미스매치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우조선 측은 "기존 수주 건과 회사 운영을 위해 필요한 운영자금은 한 달에 8000억원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수주가 없는 상황에서 매달 이 정도의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제대로 운영이 된다는 얘기다.
조선업 관계자는 "지난해 4조원대 지원이 이뤄져서 회생의 불씨가 지펴졌지만 이 자금은 추가 수주가 이뤄진다는 전제로 계산된 것이라 그 조건이 깨진 현재로선 아무 의미가 없다"며 "정치 리더십이 부재하고 공무원들이 책임을 돌리는 사이에 이 조선사는 한진해운 사례처럼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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