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중국을 대하는 법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원종태 베이징 특파원 | 2017.02.21 06:10
다양한 아시아 국가들이 초강대국 중국과 펼치는 외교 기사를 접하다보면 종종 의미심장한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그중 인구 600만명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14억명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외교는 꽤 인상적이다. 싱가포르 국민 중 75%는 중국 한족으로 1~2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중국 본토 출신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같은 민족, 같은 문화라고 해도 싱가포르는 중국에게 눈치 보는 법이 없다. 단적으로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가 지난해 8월 미국을 방문해 "이미 인정받은 원칙에 기초한 국제중재법정(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은 서로 누구의 총이 센지 싸우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밝혔다. 이 짧은 발언은 싱가포르가 중립국가(비동맹국가)인데도 중국과 필리핀 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필리핀(미국·일본) 편에 섰다는 신호로 읽혔다.

중국은 즉각 발끈했다. 리우쩐민 외교부 부부장이 "싱가포르는 남중국해 분쟁에 관여하지 말라"고 공개 발언했다. 중국이 극도로 예민해하는 문제에 싱가포르가 절대 섣불리 나서서는 안된다는 자중론도 잇따랐다.

싱가포르와 중국은 이로부터 한 달 뒤 베네수엘라에 열린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직후 또 맞붙는다. 베이징 중앙정부의 보수 입장을 대변하는 중국 환추스바오가 "싱가포르 대표가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최종 문건에 상설중재재판소에 대한 지지 내용을 넣으려 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주중 싱가포르대사관 스탠리 로 대사는 환추스바오의 후시진 총편집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이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싱가포르 대표단은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나 중재 판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사실상 싱가포르 대사와 환추스바오의 입을 빌린 양국 정부의 다툼이나 다름 없었다.

중국의 싱가포르 길들이기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급기야 지난해 11월에는 대만에서 군사훈련에 사용한 싱가포르 장갑차 9대를 홍콩 세관이 '화물 검색'을 이유로 억류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중국 외교부는 "이 억류는 홍콩 정부 소관으로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발뺌했다.


또 한편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싱가포르도 대만 정부와 모든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싱가포르는 이전에도 중국이 가장 중시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만과 지속적인 군사훈련을 전개한 바 있다. 영공이 좁은 싱가포르가 대만으로 공군기를 보내 작전 연습에 나선 사례도 있다.

그때마다 중국은 싱가포르를 변절자로 취급했다. 싱가포르는 그러나 자국의 기본적인 영토 방위를 위해 대만뿐 아니라 미국이나 독일, 인도, 호주, 태국 등에서도 군사 연습을 하고 있다며 중국 주장을 일축했다. 중국이 자국 영토 하이난에서 싱가포르 군사 훈련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싱가포르 군대의 해외 원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싱가포르가 이처럼 중국에 끌려가지 않는 것은 특유의 역할론이 있다는 분석이다. 싱가포르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으로서 중국 서남쪽 대부분과 국경이 마주해 있는 아세안 다른 국가들과 중국과의 관계에 독특한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해 9월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시진핑 국가 주석이 굳이 리셴룽 총리를 옵서버로 초청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싱가포르 특유의 1당 집권체제도 중국 공산당의 나아갈 모델로 꼽힌다. 당장 싱가포르 난양이공대에만 싱가포르 특유의 법치주의를 배우기 위해 20여년간 수 만명의 중국 공무원들이 다녀갔다.

한반도 사드 배치로 고조되고 있는 한·중 관계 긴장이 이제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롯데그룹이 사드 부지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중국이 더 큰 제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사드는 아시아 국가들의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라는 거대한 숙명 속의 한 장면일 뿐이다. 사드를 둘러싼 일회성이 아니라 싱가포르가 어떤 식으로 미·중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줄기차게 자국 이익을 지켜왔는지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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