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고통’에 몸바친 10명의 女작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7.02.20 13:57

[따끈따끈 새책]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치열하게 실천한 여성 작가 10명의 삶과 문학

줄리아 로버츠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통해 자아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면, 작가 이화경은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를 통해 단단히 박힌 세상의 껍질을 깨는 모험에 나선다.

사랑은 하되, ‘먹고 기도’하는 대신 ‘쓰고 파괴’한다. 자아실현이나 행복 추구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식의 틀을 바꾸는 작업에 집중한 셈이다.

저자 이화경은 여성 작가 10명의 글을 빌렸다. 삶이 흔들리고 위태로울 때 생애 전반에 걸쳐 움츠리지 않고 파닥거린 이들의 삶과 문학에서 작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두 개의 눈 너머 네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불길한 눈의 소유자 창힐(倉頡)과 다름없는 10명의 작가가 그 주인공”이라며 “철저히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려 했던 이들은 환멸의 어둠으로 채색된 현재를 넘어서기 위해 찢어진 겹눈으로 미래를 투시했다”고 적시했다.

“불쑥불쑥 치밀고 올라오는 불안과 채울 길 없는 결핍과 알 수 없는 갈망에 미칠 것 같았던” 서른 살에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를 읽고 위로받은 이야기, 다른 노동이 아닌 글을 쓰는 노동으로 돈을 벌고 싶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힘을 얻었던 이야기 등 평범하지 않은 여성 작가들의 치열하고도 고뇌 깊은 삶이 에세이로 소환됐다.

저자가 ‘모신’ 작가들은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시몬 드 보부아르, 잉게보르크 바흐만,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프랑수아즈 사강, 실비아 플라스, 제인 오스틴이다.

모두 시대의 아웃사이더이자, 가부장적 체제 안에서 반기를 들었던 ‘불온한’ 여성들이었다. 불평등한 체제에 소리를 높이고, 타인의 고통에 적극 뛰어 드는 행동가로 기존 시스템에 저항했다.


인신공격과 중상모략 등으로 상처 입었을 때, 로자 룩셈부르크는 “나는 혼자다. 사람들은 나를 증오한다. 따라서 내가 옳다”며 척후병처럼 나섰고, 노동자계급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정치적 참여를 치열하게 했던 무국적자 한나 아렌트는 “세계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진한다”는 괴테의 말을 실천했다.

저자는 두려울 때마다 이들의 ‘글’과 ‘행동’에서 용기를 얻었다. 체력과 창의성이 고갈될 땐 ‘집안의 천사’부터 죽이라던 버지니아 울프의 독기 어린 질책으로 버텼고, 주저앉고 싶을 땐 “일어서서 걸으라. 네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라고 부추겨주던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격려를 목발 삼아 걸었다.

상처받을 시간에 사랑하는 이들과 ‘서둘러’ 사랑하고 어제보다 오늘을 ‘더’ 사랑하는 데 정력을 바친 조르주 상드의 삶에선 ‘기쁨의 인생’도 느꼈다. 암 투병으로 쓰러질 때까지도 타인의 고통마저 감싸 안는 수전 손택의 ‘논 피앙게레’(Non pianggere, 울지마)란 말에선 눈물을 훔쳤다.

이들 작가는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진동했다. 자신의 권리를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 남을 위한 헌신의 함정에 빠져 있는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자는 “그녀들은 우리에게 삶이란 과정이고 생이란 ‘되어가는’(becoming)이며 존재란 ‘존재함’(being)이라고 알려주며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현재’로 봤다”며 “언제나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그들의 전투적 생을 표현하기에는 내 언어가 너무 무뎠다”고 고백했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이화경 지음. 행성B잎새 펴냄. 272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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