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상투' 잡고 9년간 기다린 투자자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 2017.02.19 08:00

[행동재무학]<171>주식 상투 잡았을 때 대처법

편집자주 |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 “주식 상투를 잡았다.”

주식투자자에게 “주식 하면서 가장 뼈아픈 경험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상투를 잡았을 때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껏 주식을 샀더니 그 다음날부터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그것만큼 낭패가 따로 없지요. ‘내가 사면 내리는’ 기가 막힌 일을 당하고 나면 뉴스나 시세 보는 것조차도 싫어집니다.

누구는 상투를 알고 잡나요? 모르고 잡고, 잡은 뒤에야 상투인지 알기 때문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거죠.

투자의 고수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2008년 1월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Merrill Lynch)에 20억 달러(약 2조원)를 투자했는데 결과적으로 큰 ‘상투’를 잡은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당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져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들이 한창 유동성 악화를 겪던 시기여서 상투 잡기 십상인 때였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베어스턴스(Bear Sterns)는 그 해 봄에 헐값 매각되고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는 가을을 못 넘기고 파산하면서 메릴린치도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다행히 메릴린치는 파산은 모면하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됐지만 BoA 주가는 2009년 초 3달러 수준까지 추락했습니다. KIC는 명백히 ‘상투’를 잡은 것이고 1년 만에 투자원금을 거의 다 날릴 처지에 빠졌습니다.

# "손절매를 하던가 아니면 물타기를 하고 기다려라."

주가는 귀신도 모른다고 하는데 주가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상투를 피하는 것은 상상 속의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상투를 안 잡는 것보다 상투를 잡았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게 손실을 최소화하고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는 길입니다.

상투를 잡았을 때 주식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손절매’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식을 매수한 뒤 주가가 내리 5% 이상 하락하면 주식을 처분한다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를 실행에 옮길 때 주저하게 되는 수가 많아서 아예 자동으로 손절매가 되도록 프로그램을 해놓습니다.

그래도 손절매 기회를 놓치면 그 다음은 소위 ‘물타기’라는 추가 매집 단계에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주가가 10% 추락할 때까지 손절매를 하지 못했다면 이 때부턴 오히려 주식을 추가 매집해서 주당 매수단가를 낮추려고 합니다.

만약 주식을 처음 매입할 때 자금을 모두 다 써버리지 않았다면 추가 매집하는데 별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돈을 빌려 추가 매집을 할지 고민하게 되겠지요.

그런데 물타기를 한 뒤에도 주가가 반등하지 않고 되레 더 떨어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웬만한 강철 심장의 주식꾼이라도 이때부턴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게 마련입니다.

이쯤되면 '회사가 망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무한정 기다리는 체념의 단계로 접어드는 투자자들이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기다림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요? 1년? 2년? 3년?

‘언젠가 주가가 회복되겠지’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투자원금이 90%가 날아가고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대로이면 포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속출하게 마련입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Temasek)은 KIC보다 1년 먼저 메릴린치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메릴린치 주가가 하락하자 계속 추가 매집을 하며 물타기에 나섰습니다. 결국 수차례에 걸친 투자액 총액은 KIC 투자규모의 3배에 가까운 59억 달러(7조원)에 이르렀습니다. 완전히 ‘물려버린’ 것이죠.

테마섹은 주가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2009년 3월 눈물의 손절매를 단행합니다. 테마섹은 이 때 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습니다.


# “원금이 회복될 때 서둘러 처분하려는 충동에 빠지지 마라.”

오래 참고 버티면 언젠가 주가가 반등하는 때가 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토록 긴 세월 기다렸건만 거북이보다 느린 주가 반등을 지켜보는 게 왜 이리 애가 타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조심해야 할 일이 생깁니다. 주가가 회복돼 원금 손실에서 딱 벗어나는 순간이 오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식을 처분하고픈 충동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긴 세월 참고 기다림에 대한 분노의 처분이랄까요.

오랜 원금손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주식을 처분하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일반적인 행동입니다. 행동재무학에서는 이를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지긋지긋한 원금손실에서 막 벗어나는 순간 서둘러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인간의 당연한 심리이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식을 처분한 뒤에도 주가는 계속 오릅니다. ‘내가 팔면 오르는’ 또 다른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행동재무학에서는 처분효과의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즉 원금손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주식을 처분하고픈 충동을 잘 참을 수 있어야 진정한 투자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BoA 주가는 2014년 1월 17달러 수준까지 반등했고 KIC의 투자원금 손실도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자 불쑥 손절매 여부를 검토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투자원금을 거의 다 날릴 뻔한 적도 있었는데 절반이라도 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게 손절매를 거론하는 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KIC는 BoA 주식을 처분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다시 2년 10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BoA 주가는 14~17달러 범위에서 지루하게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2016년 11월 8일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엄청난 속도로 오르기 시작합니다. BoA 주가는 트럼프 당선 이후 석 달 새 무려 45%나 치솟았습니다.(☞관련기사: "생큐, 트럼프" 한국국부펀드 죽다 살아난 사연)

이제 KIC는 투자원금을 거의 다 회복했습니다. BoA 주가가 10% 정도만 더 오르면 원금손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빠르면 내달에도 가능해 보입니다. 9년 만의 일이죠.

다만 투자원금을 회복하는 순간이 왔을 때 걱정이 듭니다. 분명 9년이나 보유한 지긋지긋한 BoA 주식을 처분하자는 주장이 나올 겁니다. 그러나 BoA 주식을 성급히 처분하려 하지 말고 주가가 40달러에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면, 즉 처분효과의 오류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커다란 투자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메릴린치 '상투'를 잡고 9년이나 기다린 KIC가 원금손실에서 벗어날 때 처분효과의 오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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