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트럼프와 '닫힌 사회의 친구들'

머니투데이 이승형 국제부장 | 2017.02.08 05:0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뉴스1
가령 당신이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반 감금상태로 고립돼 있다고 생각해보자. 외부로부터의 정보는 일체 차단되고, 특정 집단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교육 혹은 훈련을 받는다. 이는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일이 모두 금지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더해 수면시간이 하루 2~3시간으로 줄어들고, 쉴 새 없는 토론과 발표를 해야 한다. 아마도 평범한 지각 능력을 가진 이라면 길게는 한 달, 짧게는 1주일이면 그 집단의 주장에 동조하게 될 것이다. 아니, 동조를 넘어 다른 누군가에게 그 주장을 설파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믿기지 않는다고? 그 환경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같은 상황은 개인이 감당하기에 분명 버겁고 벅차다.

그런데 이 같은 환경과 상황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고문이나 세뇌 등의 물리적 방식을 빼고 나면 기업이나 기관들의 직원 연수도 이에 해당한다. 단기간에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주입할 때 유효한 방법이다. 눈에 보이는 강요나 압박이 없어도 일정 수준의 효과를 얻는다. 누군가 내 머리 속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기존의 생각을 바꿔 놓는 것이다.

심리학자 오카다 다카시는 저서 ‘심리조작의 비밀’을 통해 이 같은 현상이 역사 속에 늘 존재했으며,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 자살폭탄테러의 범인이 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고립되고, 차단되고,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일.

특히 평소 자존감이 낮고,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높았던 사람은 이런 환경 조건에서 ‘심리조작’을 당하기 쉽다. 멀쩡했던 유명 연예인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전 재산을 넘기고 잠적하거나 모범적인 대학생들이 다단계 판매에 휘말려 수백만원 어치 물건을 사는지에 대한 해답이 심리조작에 있다는 것이다.

심리조작의 핵심은 물론 ‘남을 속이는 일’에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많이 동원되는 수단이 공동의 적(敵)을 만들어 분노와 증오를 조장하는 일이다. 이른바 ‘분열의 간계’이다.

아놀드 히틀러가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했던 많은 행위 중 하나가 증오를 부추기는 일이었다. 유태인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어 분리하고, 종국에는 말살의 길을 택했다. 이를 목도한 20세기 대표적 지성 칼 포퍼는 그 유명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다. 그러고 보면 다카시가 설명한 심리조작의 조건들, 다시 말해 고립과 폐쇄성, 정보 차단, 주입식 교육 등은 포퍼의 ‘닫힌 사회’의 환경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바로 이 순간에도 닫힌 사회의 재앙을 보게 된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만들려는 미국 우선의 세계는 또 어떠한가. 그의 언행을 보면 고립주의, 장벽, 배타성, 맹목적 애국주의 등이 뒤엉켜 있다. 죄다 분노와 증오의 언어들이다.

그는 이슬람 7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불허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달러 환율이 춤을 추고, 극우세력의 아드레날린이 치솟고, 기업들의 주가가 널을 뛴다.

트럼프는 분명 적을 만들 줄 안다. 노회한 기업인 출신 답게 손실 혹은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예단하고, 포장하고, 선전해서 자신의 친구들로 하여금 돌을 던지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이는 사이비 종교집단이나 다단계 사기판매업체의 술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분명 포퍼의 열린사회와는 거리가 있다. 트럼프는 그 스스로가 열린 사회의 적들을 자처하고 있으며, 닫힌 사회의 친구들을 결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 간 닫힌 사회를 톡톡히 경험했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색깔을 덧씌우거나, 합리적 의심에 근거한 의혹 제기를 유언비어라고 거짓말하는 지도자, 그럼으로 해서 비판 세력을 분리시켜 친구들에게 증오의 돌을 던지게 하는 지도자를 뽑아 현재의 탄핵 국면에 이르렀다. 외교 또한 지혜롭지 못해서 주변국들로부터 압박과 굴욕을 자처했다. 사드 배치, 위안부 합의에 따른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대한민국 차기 정권은 트럼프와 닫힌 사회의 친구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국익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하고 치밀한 외교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그 출발점은 열린 사회의 친구들을 모으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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