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100년전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 2017.02.03 06:30
"전(前) 한국 황제를 왕으로 삼고 창덕궁 이왕이라 하며, 한국(韓國)의 국호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朝鮮)이라 칭한다.'

순종 3년(1910년) 8월 29일 일본 '천황'(일왕)의 칙령을 기록한 순종실록부록 1권의 내용이다. 대한제국이 주권을 잃고 일본의 속국이 돼 망한 날이다.

당시 대한제국의 정세는 500여년을 이어온 조선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서구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혼란의 과정을 겪은 고종 황제가 1897년 국호를 대한(大韓: 대한국)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하며 변화를 꾀하던 시기다.

한반도 정세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임오군란, 갑신정변, 한·미 한·영 수호조약, 청·일간의 톈진조약,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왜란, 명성황후 시해, 아관망명, 러일전쟁, 을사늑약, 헤이그 밀사 파견, 순종 양위에까지 숨가쁘게 흘러갔다.

외세를 등에 업고 개화파와 수구파로 나뉘어 정쟁에 몰입하다가 황제국으로 선포한 지 13년만인 1910년 나라를 잃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슬픈 역사다. 미국, 프랑스,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서구 열강은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국제 정치 외교 군사전을 벌였고,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자주권을 잃었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반도 정세도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 일본의 군국주의의 부활과 대국화, 러시아의 패권 강화 등이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대한제국이 두 개로 쪼개져 한반도 북쪽은 늘상 불안한 핵 위협의 리스크가 있는 지역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107년전 나라를 잃은 이유는 간단하다.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중국탐구서인 '용(龍)과 춤을 추자(한국의 눈으로 중국 읽기)'에서 국력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로 분류했다.

하드파워는 군사력과 경제력, 소프트파워는 한 국가의 문화, 규범, 가치와 관련된 매력을 통해 행사하는 힘이라고 정의했다. 이 두 가지를 고루 갖춘 국가가 진정한 대국이며, 중국은 이 가운데 소프트파워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과 북핵문제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양상이다. 일본의 독도 영토 도발과 중국의 경제 압박 상황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까지 겹쳤다.

우리가 100여년전의 치욕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견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키워야 한다.

하드파워를 보면 2016년 IMF 기준으로 미국의 GDP(국내총생산)는 18조 5619억달러, 중국은 11조 3916억달러, 일본은 4조 7303억 달러로 각각 세계 1, 2, 3위의 대국이다. 군사력은 국방비만 비교해봐도 2016년 기준으로 미국은 640조원, 중국은 224조원, 일본은 52조원 수준이다.


우리의 GDP는 1조 4044억달러로 세계 11위이고, 국방비는 38조원 가량으로 구한말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준에서 주변 강국과 견주기는 쉽지 않다.

이 시점에 대한민국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경제력을 더 키우는 것이다. 소프트파워는 군사, 경제력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의 지배력이 자연스럽게 문화 등에 배어 나오는 것이고, 군사력은 경제력에 상당부분 기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상황은 글로벌 열강들의 파워게임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수월치 않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혼란한 가운데 탄핵정국 이후를 대비한 대권 경쟁에 속도가 붙었다.

그 와중에 여야 할 것 없이 대다수의 후보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 '재벌개혁'을 핵심 화두로 내놓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돼 가장 표심을 끌 수 있는 화두이기는 하다.

한국 기업들이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기업을 적으로 놓고, 이를 해체나 파괴의 대상으로 두고 힘을 쏟을 때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개혁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하되 대권주자의 표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당사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고민하라는 얘기다.

전세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 내부 이슈로 외부와의 경제전쟁의 동력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데 말릴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손목과 발목을 모두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얻는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재계도 해를 거듭할수록 성숙해지고 있고, 과거와의 단절을 원하고 있다. 정치권과 섞이지 않고 경제에만 신경 쓰고 싶어한다. 경제력으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원하고 있다.

올해는 대한제국 선포 120년이 되는 해다. 우리 내부의 싸움에 몰입해 외부의 공격에 둔감해져 100여년전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오동희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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