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도 몰랐던 반기문 불출마..왜?

머니투데이 우경희, 이건희 기자 | 2017.02.01 16:14

[the300]"정치인들과 함께 길 가는 것 무의미"..입지축소·정치환멸 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2017.2.1/뉴스1 <저작권자 &copy;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때 보수진영 유일의 대안이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캠프 내에서도 1일 불출마 선언이 나올 거라 예상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

반 전총장은 이날 오전 일찌감치 여의도를 찾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을 방문했다. 오후에는 국회 본관으로 들어와 정의당을 예방한 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지난달 12일 귀국 이후 국내 정치지도자들을 만난 소회를 풀어놓을 때만 해도 의례적인 회견으로 보였다.

반 전총장이 "인격살인과 음해, 가짜뉴스로 인해 정치명분이 실종되면서 개인과 가족, 10년간 봉직한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를 끼쳤다"고 말하자 취재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불출마 가능성이 언급됐다. 이날 오찬까지만 해도 캠프 멤버들이 각자 기자들과 만나 '완주'를 다짐했던 터였다.

반 전총장은 끝내 "내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불과 21일. 짧고 허망한 대권행보였다.

반 전총장의 갑작스러운 불출마선언은 귀국 후 축소일로를 걸어 온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귀국 전 한때 대권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반 전총장의 지지율은 귀국 후 급락해 10% 초반을 전전해 왔다. 큰 틀의 대권전략과 정치철학 부재가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작게는 캠프 운영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인력 간 갈등이 발생해 대외 메시지가 매번 혼선을 빚었다. 캠프 운영을 위한 비용문제에 대한 고민을 반 전총장 본인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캠프 운영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위안부 합의 문제를 물고늘어지는 언론에는 "나쁜놈들"이라고 폭언을 하기도 했다.

외로워진 반 전총장의 처지는 이날 정당방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반 전총장을 맞은 새누리당은 냉대하지는 않았지만 대권주자로서는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했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회동 말미에 "나이가 들면 미끄러져 낙상하면 큰일이니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는 말로 반 전총장의 처지를 사실상 비꼬았다.


새누리당 한 TK(대구·경북) 소속 의원은 "반 전총장이 귀국 전부터 새누리당에 대해 당연히 나를 도울 것이라고 여겼다는데 이것이 패착"이라며 "그런 나이브한 태도로 국내정치에 임했으니 결국 보수결집은 물론 중도 세력 확장에도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귀국 후 목도한 국내 정치현실에 반 전총장이 환멸을 느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반 전총장은 귀국 직후부터 언론의 혹독한 검증에 시달려야 했다. 공항철도 개찰구에 1만원권 2장을 집어넣으려 한 것부터 편의점에서 수입산 생수를 집은 것까지 비난의 대상이 됐다. 편집된 성묘 영상은 '퇴주잔 논란'을 불러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반 전총장이 "가짜뉴스"라며 울분을 토한 내용이다.

야당은 매 건 반 전총장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반 전총장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도 이어갔다. 측근의 비리에 대한 공세는 날로 수위를 높여갔다. 반 전총장의 재산신고와 엮어 반 전총장의 아들까지 공격의 범위를 넓혔다.

결정타는 야권이 아니라 여권에서 날아왔다. 조기대선이 가시적인 상황에서 강력한 구심점이 될 대선후보가 절실한 여권은 끝내 반 전총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바른정당은 반 전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세력이 강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반 전총장과 '밀당'하다가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은근히 새 대권주자로 밀어올렸다.

반 전총장은 결국 "이 정치인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과 함께 불출마를 선언했다. 언제 불출마를 결심했느냐는 질문에는 오늘 오전"이라고 답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을 만나는 과정에서 결심했다는 거다.

반 전총장은 회견 후 쏟아지는 언론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쓸쓸하게 정론관을 돌아 나갔다. 새로 구한 '반기문 대선캠프' 사무실 입소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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