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인에겐 죄가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강소기업'의 나라 독일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B사를 설립한 오너 2세이기도 하다. B사의 수많은 해외법인 중 한 곳인 A사를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어떠한 의전도 거부한 채 A사를 홀로 방문했다. 그리고 A사 대표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가 업무를 마칠 때까지 사무실 앞 소파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국내 기업에서였다면 불가능했을 법한 이 광경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A사의 대표는 "독일 본사의 오너 일가는 절대 회사에서 자신들만의 특권을 내세우지 않는다"며 "회사는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철저한 신념 때문"이라고 말했다.
80대 독일 오너의 사례는 국내 기업들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땅콩 회항', '기내 난동', '술집 종업원 폭행' 등 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단지 회사를 제일 처음 만든 사람과 그의 가족들이란 이유로 국내 기업 오너들은 사내에서 전권을 휘두르기 일쑤다. 보유한 지분이 많든 적든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직원을 부리고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시스템이 허술하고 '제왕적 오너십'의 영향력이 막강한 중견, 중소 규모 기업일수록 이 같은 사례는 더욱 잦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를 방조한 우리 사회의 관대함이 자리한다. "그래도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되는 기업이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온정주의와 성장제일주의 오류에 빠져 이들의 잘못을 엄단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쁜 과정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자국 경제의 큰 역할을 담당하는 거대 기업이라도 잘못이 발각됐을 때는 수 조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잘못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문화를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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