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안네의 집으로 가는 길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7.02.11 09:53

<54> 여행 '위시리스트' 하나씩 지워나가기

편집자주 |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암스테르담 안네의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운하/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우연한 계기로 머릿속에 한 번 각인된 곳은 자신도 모르게 여행의 ‘위시 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는 책을 읽다 인상 깊었던 곳들이 주로 그렇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어릴 적 읽은 '안네의 일기'의 배경 도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침 암스테르담에 잠깐 들를 기회가 있어서 오랜 숙제를 풀 수 있었다. 고흐 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오자마자 목적지를 안네의 집으로 잡았다. 하지만 지도도 없고 지리도 모르니 물어물어 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에게 물었더니 자신도 독일에서 와서 잘 모르겠단다. 막연한 심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조금 전에 고개를 저었던 아가씨가 일행을 데리고 나타났다.

“제 친구가 거길 안대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친구에게 ‘끌려온’ 아가씨가 휴대전화에 지도를 불러내더니 자세히 길을 가르쳐줬다. 그녀가 말해준 방향으로 운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운하는 생각보다 깨끗한 편은 아니었지만 사통팔달로 뻗은 물길은 아름다웠다. 운하를 따라 도로가 휘어 돌고 그 도로를 따라 또 운하가 휘어져 돌았다.

한참 걷다보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아가씨가 길을 가르쳐줄 때는 그리 멀지 않아 보였는데, 아무리 가도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길을 잃은 건가?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다시 길을 물었다. 그녀가 꽤 먼데 걸어갈 수 있겠느냐며 자세히 길을 알려줬다. 이상하네? 아가씨들은 금방이라고 했는데. 마치 안네와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묻고 또 물으며 가다보니 저만치 교회의 종탑이 눈에 들어왔다. 안네의 집이 암스테르담 서교회 옆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다 왔다는 뜻. 교회를 돌아 조금 올라가니 드디어 안네의 집이 나타났다.

안네 프랑크(Anne Frank). 그녀는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유대인 소녀다.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1933년 나치스의 유대인을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지만 1941년 독일은 네덜란드마저 점령한다. 안네의 가족은 아버지가 경영하던 식품회사 건물 뒤의 별채에 숨는다. 1942년에서 1944년까지 이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친구들과 회사 직원들이 가져다주는 식량에 의존해 살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밀고를 하면서 1944년 8월 4일 발각돼 독일의 아우슈비츠로 보내진다. 1945년 3월 안네는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 이송됐다가 언니와 함께 장티푸스에 걸려 숨을 거둔다.

안네의 집 전경. 집 앞으로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안네의 일기'는 그녀의 열세 살 생일선물로 아버지가 준 일기장에 숨어 지내면서 일어난 761일 동안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독일이 패망한 후, 안네의 아버지가 숨어 지냈던 은신처를 찾아갔다가 딸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안네의 일기'가 발간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안네 프랑크의 집’은 연 방문객의 수가 50만 명을 넘는 관광명소가 됐다. 이곳에는 '안네의 일기'를 각국어로 번역한 책과 가족 및 수용소 사진 등이 진열돼 있다.

안네의 집은 눈에 띌 만큼 특별할 건 없었다. 앞에 운하가 흐르는 평범한 다층 연립주택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는데도 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기다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집 앞에 서서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일행과 시내서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 그래. 반드시 눈으로 봐야 확인되는 건 아니지. 폭력을 피해 이곳에 한 소녀가 숨어 살았고 70여 년이 흐른 뒤 동양의 사내 하나가 와서 그녀의 짧았던 삶을 기린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규칙도 포기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미련 가득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마침 서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소녀여! 폭력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평온하게 잠들라. 비록 서둘러 돌아섰지만 안네가 살던 집 앞에 서서 묵념을 한 것만으로도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또 하나의 위시 리스트를 지웠다. 오래 벼르던 곳은 꼭 가보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행은 ‘마음의 짐을 덜어놓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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