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특검이 아닙니다. 너무 억울해요”
25일 체포영장이 집행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강제로 불려 나온 ‘비선 실세’ 최순실씨(61·구속기소)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11시 15분쯤 특검 사무실에 도착한 최씨는 법무부 호송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 공동체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어요. 어린 손자까지 멸망시키겠다고 그러고 …”라고 40여 초 동안 고함을 질렀다.
최씨의 육성이 통화 녹음 파일이 아닌 생중계로 전 국민에게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최씨의 모습은 작년 10월31일 검찰에 처음 출석하며 “국민 여러분 용서해 주십시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흐느끼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목소리가 워낙 작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후 최씨는 특검이나 헙법재판소에 증인으로 나와서도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최씨의 돌발 행동에 100여 명의 취재진은 당황했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특검 빌딩 관계자는 “염병하네”라는 말을 세 차례 퍼부었다.
최씨가 ‘민주주의’ ‘자백 강요’ 등을 운운하며 수사에 강한 불만을 표한 것에 대해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오늘 특검에 출석하면서는 부당하게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하는데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 뒤 “근거 없는 주장에 개의치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씨의 돌발 행동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트집을 잡아서 특검 수사에 흠 내고자 하는 의도 아닌가 싶다”며 “경제공동체 등의 말을 하는걸로 봐서 진술을 미리 준비한 것 같다”고 답했다.
이 같은 최씨의 모습은 조사실에서는 재현되지 않았다. 이 특검보는 “최씨가 특별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서울구치소에서 체포영장이 집행될 당시에도 별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메라 앞에서만 자신의 주장을 목 놓아 외친 셈이다.
특검팀은 이날 최씨를 상대로 딸 정유라씨(21)가 이화여대에서 특혜를 누리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업무방해)를 조사했다. 체포영장에 업무방해 혐의만 적시돼 있어 최씨의 동의가 없으면 뇌물수수 사건 등은 조사할 수 없는 탓이다.
체포영장 집행에 따라 최씨에 대한 조사는 48시간 이내에 마쳐야 한다. 시한이 끝나면 뇌물수수 등 다른 혐의를 넣은 체포영장을 다시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의 경우 체포 이후 수순은 구속이지만 최씨는 이미 구속 수감된 상태다. 다시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이 더 가능성 높게 검토되고 있다.
최씨는 앞서 이경재 변호사를 통해 ‘묵비권 행사’ 등 수사 비협조를 예고했다. 이 특검보는 그러나 “그대로 조서를 작성하면 돼서 별 문제가 없다”고 거듭 설명했다. 묵비권 행사는 혐의 부인으로 간주된다. 진술을 받지 않아도 혐의 입증에 자신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됐다.
국정 농단 파문의 장본인인 최씨를 상대로 특검팀이 조사할 내용은 방대하다. 특히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보강 수사는 물론 ‘공범’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전 조사 성격을 띠고 있다.
구속영장 기각 후 이 부회장에 대한 보강 수사에 나선 특검은 이날 김신(60) 삼성물산 사장과 김종중(61)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이들을 상대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전후 상황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