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건보료 개편 '첫 걸음'의 의미

머니투데이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 2017.01.25 04:55
2014년 2월, 생활고에 시달리다 비극적 선택을 한 '송파 세모녀' 사건은 우리 국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직과 질병에 시달렸지만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세 모녀에게 부과된 건강보험료는 월 약 5만원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에서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 한다. 비교적 낮은 가격에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성공 사례로도 꼽힌다. 그러나 15년 넘게 유지돼온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송파 세모녀와 같은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2015년 8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 오랜 숙제로 남아있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이번에 마련했다. 복지부는 계층별로 미치는 영향과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한 뒤 면밀한 시뮬레이션과 검토를 거쳐 지난 23일 공청회에서 개편안을 공개했다.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은 보험료 부담을 덜어주고 고소득층은 더 많이 내도록 해 건강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건강보험료를 내는 방식을 바꾸는 건 대부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에서 준비한 개편안 모형도 찬찬히 검토하고 소득 하나로 보험료를 내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살펴봤다. 하지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가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대안을 찾기는 어려웠다. 국민 누구나 투명하게 소득이 파악된다면 소득만으로 보험료를 내는것이 바람직한 방향임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현재 모든 소득이 투명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득에만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건 쉽지 않다. 소득 파악을 위해 각 정부 부처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의 충분한 논의와 국민 의식의 개선도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소득만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을 즉시 시행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지금보다는 좀 더 공평하게 보험료를 내도록 부과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이 개편안을 제시하게 됐다.


성별·나이에 따른 평가소득이나 자동차로 인해 건강보험료 수준이 상대적 높았던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게 개편안의 핵심이다.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 데 초점을 뒀다. 소득이 얼마 없는 서민들이 생계를 위한 자동차나 조그만 아파트가 있다고 해서 보험료를 불공평하게 많이 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동시에 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이나 재산이 있음에도 자식의 피부양자로 있거나 직장을 다니면서 보수 외에도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경우 그만큼 보험료를 더 내도록 했다. 다만 한 번에 많은 부분을 개편하게 되면 소득이나 재산이 있어도 그동안 내지 않았던 보험료를 내게 된 국민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을 감안했다.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하기로 한 건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다.

정부에서 내놓은 이번 단계적 개편안이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공청회에서 제시된 개편방안은 최종 방안이 아니다. 앞으로 보건복지부는 국민의 소리도 많이 듣고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논의가 이제 시작됐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용의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등고자비(登高自卑) 글귀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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