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19일 열린 최씨·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에 대한 4회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58)은 자신이 청와대의 '꼭두각시'였다며 책임을 박 대통령에게 돌렸다.
이 부회장은 "재단 설립과 관련해 하나도 한 역할이 없느냐, 꼭두각시인가"라는 안 전 수석 측 변호인의 질문에 "이 일과 관련해선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또 "안 전 수석이 처음에 300억원이라고 한 출연 규모를 500억원으로 올리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했다"고도 폭로했다.
특히 재단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 자신이 언론에서 '재단 출연은 대기업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밝힌 건 안 전 수석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책임 소재가 청와대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 부회장은 "안 전 수석이 청와대가 개입한 적 없다는 취지와 같은 입장을 유지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청와대의 은폐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단 출연 문제와 관련해 전경련이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청와대와의 선 긋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국회 청문회에선 '재단 출연과 관련해선 답변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공판에선 책임을 강하게 부정했다. '당신의 증언을 책임질 수 있냐'는 최씨 측 변호인의 압박에 대해서도 "나는 안 전 수석의 말을 그대로 한 것"이라고 맞서는 등 이전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그동안 재판이 진행되면서 최씨 등에 대한 혐의가 짙어지자 전경련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지난 1~3회 공판에서 검찰 측이 재단 출연금과 관련해 수많은 증거들을 쏟아내자, 사실을 부정하기보다 '꼬리 자르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전경련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계속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이날 "위(청와대)에서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게 어떻게 강압이 아니냐"며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특히 공판 내내 '청와대의 압력'과 관련한 안 전 수석의 검찰 공소 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연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부회장이 법정에서 공개한 '파란색 포스트잇'도 그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그는 안 전 수석이 자신에게 '야당·특검은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보낸 메모를 자신의 지갑 속에서 꺼냈다. 미리 지갑에 챙겨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으로, 의도적인 연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경련이 온전한 피해자인지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 시각도 많다. 청와대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뤄진 출연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청와대로부터 반대 급부를 받아내려는 정황이 짙어서다.
실제로 지난 11일 2회 공판에선 대기업이 자신들의 '현안'에 대한 해결을 바라고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정황이 다수 공개되기도 했다. 검찰은 SK·CJ 등이 총수의 사면을 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요청한 증거도 제시했다. 삼성·현대차 등 다수 대기업 총수들은 사업 허가권과 기업 인수 등 자신들의 현안을 정리해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 가져가기도 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