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틱, 택, 톡] 친구의 부고

스타뉴스 김재동 기자 | 2017.01.21 09:00
지난 주말부터 바람이 맵다. 겨울이 본때를 보여주던 16일 오전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 친구를 멀쩡하게 마지막 본 날이 2016년 12월31일였으니 황망하기 이를데 없다.

넉넉한 친구였다. 180 넘는 키에 90킬로 넘는 덩치를 사람좋게 흔들며 ‘허허’하는 너털웃음을 수시로 흘리곤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엔 병원 사무장 노릇을 오래했고 그 일이 떨어지고는 생판 낯선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해체 현장을 쫓아다녔다. 나 만나기 이틀전 그는 2년간의 아랍에미레이트 생활을 접고 귀국한 터였다.

세세하게 생각난다. 난 술을 한잔 하자했고 친구는 주저했다. 밤늦게 송년예배에 가야한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굳이 우겨 주꾸미집으로 끌고갔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아랍에서의 2년동안 돈은 좀 모았다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돈 쓸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좀 쉬다 2월부터는 다시 영광현장으로 내려갈 생각이라고 했다. 군제대후 복학한 아들과 딸, 두 대학생 건사의 어려움을 서로 호소하고 공감했으며 그 아이들의 미래가 밝지않음에도 같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쉬 죽지않을 것 같은 우리 둘의 노년을 같이 걱정하기도했다.

송년예배를 신경쓰는 눈치라서 우린 소주 한병을 나눠먹고 커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친구는 계획을 얘기했다. 영광에서 한 2년 있고 다시 고리 원전 해체작업에 가면 또 1~2년 버틸 수 있을거라고. 그때쯤이면 애들도 직장 잡을 테고 그 다음일이야 그때 닥쳐 생각하면 되지않겠냐고. 간간히 간호사로 맞벌이하는 집사람에 대한 미안함도 곁들였다. 우린 어쨌거나 ‘지난 1년이 고된 나날였고 빨리 간 세월였다’는 결론에 맞장구치고는 송년의 만남을 끝냈다.

나는 그렇게 그 친구를 봤지만 못본 친구들이 자릴 만들자고 설쳐댔다. 하지만 제각각 청주와 서울과 수원에서 제각각의 일들을 하고있던 처지라 쉽지않았다. 결국은 ‘설연휴중 청주에서’라는 정도의 러프한 계획만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뒀던 터다. 그래놓고 친구가 세상을 떴다.

빈소에서 만난 고향친구들을 통해 좀 더 세밀한 얘기를 들었다. 주식을 했었고 빚까지 졌던 모양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병원을 그만두고서는 도넛 프랜차이즈를 알아보고 다녔었던 친구였는데 느닷없이 원전관련 용역회사에 들어가버려 생뚱맞다 느꼈던 터다. 그제서야 이유가 이해가 갔다.


죽기 이틀전 밤에 친구는 고향친구들을 불러 거하게 한잔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참 취기가 오르고서야 원전현장 돌아다니며 한 2억 벌었고 그래서 이제 빚도 다 갚았다고 밝혔다한다. 한결같던 그 넉넉한 위장 뒤에 제깐의 고달픔이 있었음을 친구들도 그제서야 알았다 한다.

친구는, 물에 꼴깍 잠겨 버리지 않으려고 몇 년을 허우적거렸던 게다. 그 숨막히는 사투 끝에 다시 뭍에 발을 디뎠으니 스스로도 많이 대견했을 터다. 친구들에게 그 대견함을 자랑도 하고 싶었을 테고.. 추위가 기승을 더해가던 14일 밤의 술자리는 벅찬 뿌듯함 탓에 15일 새벽까지 이어졌고 친구는 집사람과 약속한 겨울여행을 위해 15일 오후엔 강원도로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고생한 서로를 위로하는 여행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3시에 심장마비로 저혼자 세상을 떴다. 귀국 18일만의 일이다.

그 큰 덩치가 한줌 유골로 봉안되는걸 확인하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반주로 시킨 소주가 제법 수를 늘려가도록 제각각 사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는 맥없이 툭툭 끊겼고 불현듯 맥락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단속적으로 이야기가 끊긴 순간이면 모두의 얼굴에 휑함만이 가득했다.

세상살이가 그렇다. 행복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일텐데 어느 순간 돈을 위해 행복이 희생당하는 건 아닌지. 가장으로 산다는게 피하기도 감당해내기도 벅찬 폭력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나이 쉰 넷, 죽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뜬 친구의 명복을 빈다. 친구야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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