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갈 수 없어서 더욱 그리운 곳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7.01.28 09:51

<52> 물 속에 갇힌 금강마을

편집자주 |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성천 풍경/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여행을 업으로 삼아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에게도 가지 못하는 곳은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은 지리상으로 가깝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극지나 분쟁지역도 함부로 가지 못한다. 가까이 있는데 못 가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은 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립다. 내게는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보통 금강(錦江)마을이라고 부르던 곳이 그런 곳이다. 그 마을은 주소록에서도 지도에서도 지워졌다. 물속에 갇혔기 때문이다.

그 마을을 마지막으로 찾아간 것은 2011년 초봄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영주댐 공사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댐으로 망가지기 전의 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었다. 내성천을 무엇보다 내성천답게 만드는 건 금빛 모래였다. 강가에 앉아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래알들이 사르르 사르르 흘러내려가는 게 보였다. 물과 함께 금빛 모래가 흐르는 강. 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

그 아름다운 강에 댐을 쌓는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물에 잠긴다고 생각하니 초조해졌다. 더구나 유서 깊은 안동 장씨의 집성촌, 금강마을이 통째로 잠긴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모습이라도 기록하고 싶었다. 어찌 사람의 흔적뿐이랴. 강가를 지켜온 왕버들, 강둑을 집 삼아 살던 수달, 자유롭게 헤엄치던 물고기들.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금강마을은 물속처럼 고요했다. 낮은 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너른 들판, 전체적으로 안온하면서도 만물을 품에 싸안는 느낌의 지형이었다. 조선 선조 때 장여화(張汝華)라는 사람이 처음 터를 잡았다니 언뜻 계산해 봐도 400년도 더 된 마을이었다. 곳곳에 빈집이 눈에 띄었다. 마을길을 올라가다 고색창연한 집을 한 채 만났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는데 중문 안쪽 방에서 TV소리 같은 게 들렸다. 빈집이 아니었구나. 대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주인을 불러봤다. 한참 뒤에 방문이 열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한분이 나왔다. 인사를 하니 경계의 기색도 없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여기서 혼자 사세요?”

“예, 이리와 앉아요.”

“이 큰집을 혼자 지키시려면 적적하지 않으세요?”

“별 수 있나요. 죽을 때까지 지키다 가는 거지.”

“수몰된다고 이사 가라고 안 해요?”

“한참 시끄럽더니 요샌 조용하네. 금방 나가라고야 하겠어요? 물이 차려면 한참 걸릴 텐데….”


“그래도 어디로 갈지 준비는 하셔야 할 텐데….”

“가기는 어디로 가요. 사는 만큼 살다가 갈 데 없으면 저승길로 가야지….”

금강마을에 있었던 ‘장씨 고택’. 이 집에서 혼자 사는 노인을 만났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댐이 완성되고 물이 차오르면 노인은 갈 곳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보상을 받아서 영주니 어디니 간다고 하지만 금강마을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노인의 집에서 나와 낮은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마을 너머가 바로 댐 공사현장이었다. 아!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굴삭기가 연신 강바닥을 파고 덤프트럭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잘려진 산과 파헤쳐진 강이 무참하게 널브러진 현장이 거기 있었다.

언덕 위에는 긴 시간을 머금은 과일나무들이 꽃눈을 틔우고 있었다. 주인은 가지치기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밭가의 굵은 산수유도 노란 꽃을 지천으로 내뱉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자리를 편 무덤 앞에서 할미꽃을 만났다. 조금 전에 만났던 할머니를 꼭 닮았다. 무덤 앞에는 비석 대신 ‘이장공고’ 팻말이 붙어 있었다.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봤다. 의관댁, 만연헌, 장석우 가옥, 까치구멍집…. 마을 전체가 유적이고 문화재였다. 돌아오는 길, 다리를 건너 차를 세우고 다시 마을을 돌아보았다. 강은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마을은 봄 햇살 속에 낮게 잠겨 있었다. 햇빛을 머금은 금모래들이 반짝, 손을 흔들었다.

벌써 5년도 더 지났으니 댐은 완성되고 담수도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을 잊지 못한다. 그 자리에 뼈를 묻겠다는 노인은 어디로 갔을까. 물속에 잠긴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갈 수 없어서 그리운 곳의 풍경은 뼛속에 각인되어 두고두고 떠오르기 마련이다.


베스트 클릭

  1. 1 "번개탄 검색"…'선우은숙과 이혼' 유영재, 정신병원 긴급 입원
  2. 2 유영재 정신병원 입원에 선우은숙 '황당'…"법적 절차 그대로 진행"
  3. 3 법원장을 변호사로…조형기, 사체유기에도 '집행유예 감형' 비결
  4. 4 '개저씨' 취급 방시혁 덕에... 민희진 최소 700억 돈방석
  5. 5 "통장 사진 보내라 해서 보냈는데" 첫출근 전에 잘린 직원…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