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정위 전속고발제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이기종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2017.01.18 08:53
이기종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공정거래법 위반사업자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형사고발이 있어야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전속고발제가 또 다시 폐지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여당 쪽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정당들은 전속고발제를 폐지해 누구라도 형사고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첩경이라고 믿는 듯하다. 심지어 그 부작용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공정위의 기득권 옹호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전속고발제 폐지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경제민주화 자체를 위협할 우려마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전속고발제가 폐지될 경우 의도와는 반대로 중소·중견기업이 형사고발의 주된 타깃이 될 수 있다.

통념과는 달리 공정위에 법 위반으로 신고된 기업의 대다수가 중소·중견기업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유형 중 대기업만이 주체인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또 하도급법 위반이 빈발하는 분야인 건설하도급 분야의 경우 사업자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따라서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수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이 경찰 및 검찰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수사를 받더라도 죄를 짓지 않았으면 무슨 걱정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일반 범죄와 달리 공정거래법 위반여부의 판단에는 복잡한 경제분석이 필요하며 일도양단적 판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일단 고발이 되면 혐의를 벗기까지 오랜 조사가 필요하다.

근거 없는 고발이라도 검·경이 단기간의 조사를 통해 간단히 무혐의처리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이를 악용하여 경쟁사업자나 거래처를 형사고발로 공격하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소·고발의 남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에 돌아갈 것이다.

한 기업이 형사고발의 대상이 되어 검·경의 강제수사를 받음으로써 입는 정신적·물질적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에서 독점금지법 위반에 대한 형사제재의 시행 초기에 조사대상 기업인들이 연속적으로 자살한 사례는 이를 방증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법적 방어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해 일단 형사고발을 당하게 되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수행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기술혁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소·중견기업에 형사고발의 위협은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형사고발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유죄판결까지 가지 않더라도 형사고발과 기소만으로도 기업이 많은 타격을 입기 때문에 형사고발은 악질적이고 명백한 범법행위에 국한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법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인정하는 이유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으며, 그나마 실제로 형벌을 시행하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또 형사제재를 인정하는 나라들 대부분이 명문규정이나 관행으로 전속고발제를 인정하고 있다.

물론 악질적이고 명백한 공정거래법 위반사범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중한 처벌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전속고발제의 틀 속에서 악질적 법 위반행위를 보다 효과적으로 처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의무고발제다.

검찰총장·감사원장·조달청장 또는 중소기업청장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거래위원장이 반드시 수사기관에 고발하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의 시행이 부진하다는 이유만으로 전속고발제의 전면폐지로 돌아서기보다 의무고발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만약 이들 기관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면 이를 확대해야 할 것이고, 이들이 정부기관이라 문턱이 높다면 신뢰도 높은 민간기관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전속고발제의 보호 속에 대다수의 선량한 기업들이 안심하고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하면서도, 의무고발제로 악질적인 기업은 엄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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