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촛불로 끝내고 촛불로 시작했다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 2017.01.04 04:55
지난해 11월19일 네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 갓 수능을 마쳤다는 10대 소녀가 연단에 올라섰다. 얼마 전 집에 불이나 아버지가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날려 버스비를 아끼려 50분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원서 접수비가 아까워 대학은 3군데만 썼다는 소녀는 "아르바이트 일당을 포기하고 집회에 나왔다"며 "지금 이 나라를 만든 게 정치를 하는 어른들의 책임이라면 어른이 되는 걸 포기하겠다"고 외쳤다. 따끔한 일침에 고개를 숙이는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당시 학생이었던 60대는 어린 시절 자신이 쓴 글을 들고 무대에 올라왔다. "유신체제만이 우리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는 문장을 읽어내려가며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땐 그게 맞는 줄 알았다"며 40년 넘은 후회를 내뱉었다. 떨리던 목소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변하는 데 1분이 채 안 걸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분노와 책임감을 품고 나왔다. 교복 차림의 10대들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이대 입시 특혜에 분노했고, 20~30대 청년들은 극심한 취업난과 양극화에, 40~50대 기성세대는 이 나라를 가라앉은 세월호에 비유하며 정권에 책임을 물었다. 수년 후 "엄마 아빠는 그때 뭐했어?"라는 자녀의 질문이 두려워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도 많았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광화문에서 최루탄을 피해 다녔던 20대 청년은 50대 기성세대가 돼 광장 한 쪽에서 20대에게 경험을 전했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다"는 60~70대는 선택을 후회하며 초에 불을 밝혔다.


그렇게 1000만명이 광장을 오갔다. 10주 동안 광장에 모인 촛불은 전례 없는 평화집회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압도적인 대통령 탄핵안 통과와 정치권의 자성은 촛불이 현실정치에서 만든 성과다. 정치의 무능에 대해 시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2016년은 촛불로 끝냈고 2017년은 촛불로 시작했다. 올해는 새 지도자를 세우고 나라의 기틀을 다시 세워야 하는 중요한 해다.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는 촛불이 대한민국을 완성할지 판가름난다. 유례없는 기적을 만든 촛불이 이번엔 대한민국을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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