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리의 양옆으로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 골목은 문닫은 점포가 더 많았다. 세어 보니 3곳 중 2곳꼴이었다. 문을 연 가게에도 손님은 드물었다. 그나마 반찬가게에만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유모차 손잡이나 지팡이에 의지해 점심 찬거리를 사러 나온 동네 할머니들이었다. 지난해 12월13일 정오에 찾은 도쿄 스미다구 '기라키라타치바나 거리'의 풍경이다.
스미다구는 도쿄역에서 지하철로 여섯 정거장 떨어진 곳이다. 서울로 치면 성북구쯤 되는 위치다. 일본 사회가 이 지역에 붙인 다른 이름은 '셔터도리'다. 문닫은 가게 거리라는 의미다. '반짝반짝'이라는 뜻의 원래 이름은 무색해졌다.
일본경제 황금기에 돈을 모으고 연금도 풍부한 이들과 달리 일본 경제 불황기인 '잃어버린 20년' 동안 경제활동을 한 30~50대는 '부모 세대'와 정반대 상황이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주요 소비계층인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1996년부터 줄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총인구 감소가 나타났고 상점이 문닫는 현상도 본격화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뿐 아니라 마을이 공동으로 이용한 기관이나 시설도 타격을 받았다. 초등학교 두 곳이 폐교하면서 한 곳은 복지시설로 이용되지만 나머지 한 곳은 비어 있다. 상인들이 저축을 하거나 돈을 빌리던 은행은 작은 오피스텔로 바뀌었다. 은행 바로 옆자리에 있던 주유소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하나둘 쌓인 사적 폐업은 사회 구성원이 함께 감당해야 할 공적 부담으로 전이됐다.
이곳에서 대를 이어 70년 넘게 장사한 고지마안경점의 고지마 가즈타카 사장(79) 은 "오후 6시면 남아 있는 가게들도 문을 닫는데 셔터 내린 거리가 무섭다"며 "이대로 가게 되면 편의점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15일 오후에 찾은 고베 다이쇼스지 전통시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문닫은 상가가 절반에 가까웠다. 1937년 손님을 맞기 시작한 이곳은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새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통신판매 등 유통구조 변화와 함께 고령화, 인구감소가 겹치며 손님이 뜸해졌다. 가게 매출이 줄면서 후계자를 찾지 못한 곳부터 셔터를 내렸다.
시장에서 39년 동안 장사한 아지만 차 판매점의 이토 마사카즈 사장(69)은 셔터 내린 상점 현황을 박스 배출량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재활용 목적으로 2004년부터 각 상점이 내놓은 박스를 셌다. 상품 공급이 가장 활발한 12월 기준으로 2004년 2만2420개였던 박스는 지난해 1만4160개로 줄었다.
일본경제 전문가들은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 후 경제가 추락한 데 이어 인구구조가 달라지면서 소비도 정체됐다고 진단한다. 돈 쓸 사람과 쓸 돈이 줄었고 소비여력이 있는 사람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지갑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복합불황, 디플레이션, 일본형 장기침체 등 여러 표현이 나온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국은 올해가 3년 연속 2%대 성장이 전망되고 생산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하는 원년이다. 20년 전 일본과 같은 경로를 걸어가지 않으려면 다른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는 준비돼 있을까?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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