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전 오늘…인류 대재앙의 주범들, 형장의 이슬로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 2016.12.23 05:56

도조 히데키 등 전범 7명 교수형…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세계2차대전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사진=위키피디아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咤)의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

그는 끝까지 스스로 죄인이길 거부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전세계에 수많은 희생자를 만든 장본이지만 끝내 반성하지 않았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패전 장수'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었다. 이미 그는 한 차례 권총자살을 실패한 후였다.

68년 전 오늘(1948년 12월23일) 도조 히데키, 도이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무토 아키라, 기무라 헤이타로, 마쓰이 이와네, 히로타 고키를 포함한 A급 전범 7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1945년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일본이 항복하면서 포츠담 선언에서 약속한 동아시아 전쟁 범죄인을 심판하겠다고 약속한 결과였다.

동아시아판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불리는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종전 이듬해인 1946년 5월3일부터 1948년 11월12일까지 이뤄졌다. 전범의 전쟁 관여 정도에 따라 A·B·C급 전범으로 분류했으며 각각 교수형·종신형·징역형에 처했다. 60명 넘는 전쟁범죄 용의자 중 28명이 기소됐고 판결 이전에 병사한 사람 2명과 소추가 면제된 1명을 제외한 25명이 사형·징역형 등 실형 선고를 받았다. 나머지 종신형을 받은 16명은 대부분 감옥에서 병사했다. 1939년 9월부터 6년간 전세계에 약 7000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데 대한 대가였다.

재판소로 호송되는 A급 전범들. / 사진=위키피디아

사형당한 이들은 가족과 마지막 작별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사체는 일본 요코하마의 한 화장터에서 화장됐고 도쿄만에 버려졌다. 그러나 사형당한 전범의 변호사가 화장장 인부들에게 부탁해 유골 중 일부를 빼돌려 인근 절에 보관하다 1년 뒤 매장했다.

하지만 전범들의 '사필귀정'은 극히 일부에게만 적용됐다. 세계대전을 실질적으로 지시한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비롯해 난징대학살을 주도한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731부대를 전두지휘한 이시이 시로는 면책됐고, 만주국을 실제로 지배해 소위 '2키 3스케'로 불린 기시 노부스케와 아이카와 요시스케의 경우 일본의 무조건 항복 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됐다가 석방됐다. 기시 노부스케는 훗날 총리가 되며 그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도 총리가 된다.

불명예스럽게 사형을 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30년 후 '명예회복'의 기회를 얻는다. 사형을 선고받아 처형된 7명과 복역 중 사망한 7명 등 전범 14명은 1978년 우익세력인 후쿠다 내각 때 야스쿠니 신사에 비밀리에 합사됐다. 일본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청산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것이다. 일본 지도자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전범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벌하지 못한 일본은 결국 전쟁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위안부 사과문제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전쟁에 대한 미화 논란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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