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서 갔더니 '너구리굴'… 외면받는 '흡연부스'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 2016.12.25 07:00

[이슈더이슈] 위생열악·간접흡연, 흡연·비흡연자 모두 '외면'…업계 "실효성 없어"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인근에 마련된 흡연부스 전경. 흡연자들이 흡연부스 밖에서도 흡연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스1

#애연가 최모씨(31)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 지난주 점심식사 후 평소 이용하지 않던 흡연부스를 찾았지만 결국 인근 노상에서 담배를 피웠다. 서울 종로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는 흡연부스까지 걸어서 10분 넘게 걸릴 뿐 아니라 위생상태도 좋지 않아 주로 회사 근처 후미진 골목을 이용한다.

최씨는 "도심에서 유일하게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마저 너무 열악하다"며 "흡연부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그야말로 '너구리굴' 같고 가래와 침, 쓰레기 때문에 지저분하다. 어쩔 수 없이 길거리에서 눈치 보면서 피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신 5개월째인 공모씨(32)는 외출할 때마다 '담배 테러'에 손으로 코를 막기 바쁘다. 그는 뱃속 아이에게 혹시라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 으레 흡연부스를 피해 다닌다.

공씨는 "평소에도 길거리에서 담배냄새 때문에 기분 나빴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임신하고 나니 더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며 "흡연부스는 근처에만 가도 담배냄새가 난다. 오히려 비흡연자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흡연부스(박스)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흡연·비흡연자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 흡연부스 근처에만 가도 느껴지는 담배냄새 때문에 비흡연자의 혐오대상이 됐고 열악한 위생상태 탓에 흡연자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도입 초기 담뱃값 인상·금연구역 확대 등에 떠밀린 애연가의 해방공간이자 비흡연자에겐 간접흡연을 막을 것으로 기대했던 흡연부스는 실효성이 떨어져 시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오히려 '개방형' 부스가 확산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하루 흡연부스 '무용지물'…업계선 '개방형 유행중'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컨테이너 형태의 흡연부스는 1개당 2000만~3000만원의 설치비용이 투입되지만 하루에도 수백명 넘게 이용하다 보니 제연기(연기제거장치) 성능을 초과해 뿌연 담배연기가 가득하게 된다.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앞에 설치된 흡연부스에서 흡연자들이 흡연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흡연부스 제연기는 면적에 따라 하루 200~300명, 최대 500여명을 기준으로 설치되는데 이를 초과하면 연기를 흡입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제연기 성능이 향상될수록 비용이 수천만~수억원씩 큰 폭으로 늘어나지만 흡연부스와 같은 공간에서 연기를 완벽히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제연기 제조업체 T사 관계자는 "공공부스는 제연기 성능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인원이나 유지관리도 잘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효과가 미미하다"며 "특히 면적이 넓고 입·출입이 많은 공공부스는 더 어렵다"고 말했다.

흡연부스 공급도 부족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폐쇄형(부분폐쇄형 포함) 흡연부스는 2012년 12월 마포구청에 시범설치된 이후 매년 2~3곳씩 늘어 지난달 기준 14곳에 불과하다. 개방형(24곳)을 포함하면 총 38곳이다.


연도별 설치장소는 △2013년 센트럴시티(고속버스터미널) 서울역(2곳) △2014년 남부버스터미널, 동서울터미널, 건대입구 △2015년 을지로입구역, 잠실롯데월드몰(2곳) △2016년 가든파이브(2곳) 하나은행본사(을지로, 2곳) 등이다.

업계에선 투입비용에 비해 효과가 낮은 흡연부스 대신 개방형 부스를 설치해 청소 등 관리를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등 해외에서도 폐쇄형 부스를 개방형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흡연부스 설치업체 Y사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공기정화 시스템을 도입해도 공공부스 내 연기를 처리하는 건 힘들다"며 "최근 흡연이 가능한 공간에 지붕이 설치되지 않은 개방형 부스를 설치하는 곳이 늘었다"고 말했다.

◇뒷골목으로 떠밀린 흡연자 "흡연권도 인정해야"

지하철 출입구 10m 내 금연구역 지정 등의 정책을 펴고 있는 서울시는 흡연정책 확대에는 다소 난색을 표했다. 서울시는 이 정책을 시작한 올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2843건을 단속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 9월부터 지하철역 출입구를 기준으로 10m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사진=뉴스1
서울시 관계자는 "특별히 앞으로 예정된 흡연·금연정책은 없다"며 "흡연자와 비흡연자 양측 모두 민원을 받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정책을 펴기는 사실 어렵다. 사회 전체적으로 금연 분위기 조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족한 흡연공간과 금연정책에 떠밀린 애연가들은 후미진 골목 등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과 동시에 흡연자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흡연부스 설치에 대한 기준과 관리방안도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담뱃세 인상으로 확보한 세금을 흡연정책에도 적극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흡연자뿐 아니라 비흡연자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명분으로 1갑당 1550원이던 담뱃세를 3318원으로, 담배가격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담뱃세 인상 후 세수는 지난해 10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6000억원 급증했다. 확보된 세금은 금연교육과 광고, 흡연피해 예방 등 금연정책에 투입된다.

박인택 한국담배소비자협회 상임이사는 "흡연자가 납부하는 세금이 엄청나다. 금연구역이나 정책을 확대하는 것은 좋지만 흡연자의 권리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비흡연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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