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전갈 공포증이 있다. 독침을 제거한 녀석이라도 건드릴 엄두가 안 난다. (중략) 사람들은 내게 아프리카에서 유년기를 보낸 경험이 생물학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느냐고 묻곤 한다. 그에 대한 답이 '아니다'임을 말해주는 증거는 전갈 사건만이 아니다." (1권 60쪽)
"나는 과학소설 풍의 상상놀이를 즐겼다. 친구 질 잭슨과 함께 오버 노턴 하우스 안에 우주선을 만들었는데 각자의 침대가 우주선인 척하면서 몇 시간이고 연기하는 것이었다." (1권 115쪽)
'전갈공포증'을 지니고 친구와 우주선 놀이를 즐기던 소년의 모습에서 열정적이지만 때론 무례하다는 평도 듣는 '까칠한'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모습을 바로 떠올리긴 쉽지 않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유년시절과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첫 회고록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2권으로 구성된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 시대 가장 논쟁적인 과학자이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진화생물학자로 꼽힌다.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그의 이름은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하다. 다윈의 진화론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첫 저서 '이기적 유전자'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서로 꼽힌다.
또 다른 대표작 '만들어진 신'에는 무신론자이자 회의주의자인 도킨스의 관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과학적인 논증을 통해 증명하면서 종교의 잘못된 논리가 세계사에 어떤 폐단을 남겼는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두 권의 자서전은 학술 활동만으로 다 드러나지 않은 도킨스의 개인사를 들춘다. 1권 '어느 과학자의 탄생' 편은 도킨스가 직접 밝히는 어린 시절과 지적 성장기, 책 '이기적 유전자'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2권 '나의 과학 인생' 편은 '이기적 유전자' 출간 이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생물학자'로서 보낸 인생 후반부를 다룬다. 평생 이어온 지적인 탐구 활동, 함께 교류한 학자들, 수많은 저서를 관통하는 과학적 통찰과 출간 뒷이야기 등을 담았다.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옥스퍼드에 들어가 동물학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자의 길을 결심하게 된다.
"우리는 교과서만 파고들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서 옛날 책들과 새 책들을 살펴보았다. 연구자들의 논문을 추적했다. (중략) 보고서 작성은 카타르시스였고 튜터의 격려는 일주일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이유였다." (1권 214쪽)
생물학계에 일대 지진을 일으킨 책 '이기적 유전자'의 탄생 비화도 털어놓는다. 1973년 파업으로 전력 공급이 한동안 끊기는 바람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연구를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자 그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농담 삼아 "내 베스트 셀러"라고 부른 그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다.
2권에선 과학과 문화, 종교의 교차점으로 관심을 확장한 계기를 솔직하게 밝힌다. 그는 스티븐 호킹, 피터 앳킨스, 칼 세이건,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핑커 등 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한 '제3의 문화'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거론하며 "(나의 책도) 우리 문화의 지형을 바꾸는 데 기여했기를 바란다"고 털어놓는다.
무신론자의 대표 기수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지적 무기와 육체적 용기'를 지닌 '무신론 운동의 가장 유창한 대변인'이라고 극찬하는가 하면 '만들어진 신'을 둘러싸고 종교계와 벌인 뜨거운 논쟁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문장에선 도발적인 학자 이면의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도킨스를 만날 수 있다.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학자의 과학적 사유와 열정이 넘치는 인생관을 만나는 여정이기도 하다. 책 중간중간 인생의 주요 사건을 담은 사진이 풍부하게 담겨 보는 재미를 더한다.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권 '어느 과학자의 탄생'=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김영사 펴냄. 396쪽/1만9500원.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권 '나의 과학 인생'=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김영사 펴냄. 616쪽/2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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