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혼자 가는 여행, 함께 가는 여행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6.12.10 07:34

<47> 유령마을 '카야쾨이'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편집자주 |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계1차대전을 계기로 폐허가 된 카야쾨이 마을/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여행은 혼자 떠나는 게 좋아요? 여럿이 함께 가는 게 좋아요?"

여행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대답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여행지, 여행의 목적 등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혼자 떠나보라고 권한다. 고독 속에 나를 던져 넣는 순간, 여행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기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쓰려면 혼자가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여행도 많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경우, 불안해서 또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서 친구나 동료와 함께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실크로드 탐사’ 같은 프로젝트 여행은 혼자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두 명, 혹은 여럿이 다니는 여행에도 문제는 많다. 마음이 안 맞아서 여정이 불편해지거나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면 혼자 여행하는 우리 젊은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응원을 하면서도, 오지 같은 곳에서 만날 땐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몇 년 전 지중해 인근의 ‘유령마을’ 카야쾨이에서 젊은 여성을 만났을 때도 걱정과 격려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카야쾨이는 세계1차대전의 비극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마을이다. 독일 편에 서서 참전했다가 패망한 오스만 제국은 연합국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바로 1920년 8월에 체결된 세브르 조약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영토 대부분을 잃고 이스탄불 일대와 아나톨리아반도만 남기게 되었다. 한없이 불리한 조약에 분노한 터키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연합국들은 스위스 로잔에서 터키 문제를 다시 논의했다. 결론은 세브르 조약을 파기하고 로잔 조약을 체결하자는 것이었다. 1923년 7월4일 새 조약은 체결됐지만,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이날 시작된다.

조약을 체결할 때, 연합국은 ‘이스탄불이 있는 유럽 쪽 영토를 포기하고 에게해 섬들을 차지할 것인가, 이스탄불을 갖는 대신 인근 섬들을 그리스에게 양보할 것인가’ 선택을 요구한다. 터키는 고심 끝에 섬들을 포기하고 이스탄불을 선택한다. 이에 따라 터키 연안의 모든 섬들은 그리스 영토가 된다. 이어 그리스 땅에 살던 터키인은 터키로, 터키 땅의 그리스인은 그리스 땅으로 돌아오라는 소환령이 떨어진다. 터키에 살던 130만 명의 그리스인들이 강제로 떠나야 했고, 그리스에 있던 40만 명의 터키인도 보따리를 싸야했다. 그렇게 주민들이 떠나고 폐허가 된 곳 중 하나가 카야쾨이다. 그 뒤로 이곳을 ‘유령마을’이라고 불렀다.


한국인 여성을 만났던 교회. 역시 폐허가 됐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그런 비극이 얼룩진 곳을 찾았다가 예기치 않게 한국의 젊은 여성을 만났다. 헉헉거리며 언덕을 올라가 텅 빈 교회로 들어서는데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어? 동양인이네? 카야쾨이는 그리 유명하지도 않고 관광객이 많이 찾을만한 곳도 아니기 때문에 뜻밖의 만남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핏줄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느낌만으로 단번에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직감을 믿고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이리 신기할 데가. 둘은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부천에 사는 스물여섯 살의 직장 여성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에 다니며 모은 돈을 모두 해외여행에 쓰기로 했단다. 혼자 다니기 무섭지 않느냐고 물으니, 처음에 비해 많이 괜찮아졌다며 그동안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원래는 혼자가 아니었단다. 인터넷 여행 사이트에서 만난 또래 여성과 함께 떠났는데 몇 곳을 다니면서 의견 차이가 잦았던 모양이었다. 결국 각자 원하는 곳을 다니기로 하고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오래 사귄 친구도 아니고,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끼리 함께하는 여행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낯선 땅 폐허가 된 교회 마당에 서서 그녀와 긴 얘기를 나눴다. 내 나라에서 만났으면 스쳐지나갈 인연이었을 텐데….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담 사이로 걸어가는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혼자 떠나는 뒷모습이 고독해보이면서도 아름다웠다. 역시 여행은 돈보다 용기가 먼저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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