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권력은 공포에서 나온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 2016.12.08 13:22
권력(權力)은 한마디로 말하면 '타인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화된 힘'이다.

정치권력과 국가권력이 이에 속한다. 더 넓은 의미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사회적 힘이 곧 권력이다. 제도화된 힘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인 법률로 나타난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프렌치와 벨트람 라벤의 연구에 따르면 권력은 보상적 권력(reward power)·강제적 권력(coercive power)·합법적 권력(legitimate power)·준거적 권력(referent power)·전문적 권력(expert power) 등 5가지 형태로 나뉜다.

보상적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승진이나 임금 등으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한 권력이다. 기업 내 인사권 등이 포함된다.

강제적 권력은 인간의 공포에 기반을 둔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거나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능력에 기반을 둔 권력이다. 합법적 권력은 법규에 의해 부여되는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협의 개념의 권력이 여기에 속한다.

준거적 권력은 따르고 싶은 매력을 가진 사람이나 그에 대한 호의, 충성심 등에 의해 생긴다. 연애인의 팬심과 비슷하다. 전문적 권력은 전문적 기술이나 지식에 기반해 생기는 권력이다. 존경하는 학자 등 누군가 전문성을 가질 때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따르게 되는 경우다.

우리 헌법 1조 2항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권력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권력은 헌법에 명시한 국민의 신체적 자유(헌법 제12조)를 '제도화된 힘(법률)'로서 구속할 수도, 강제할 수도 있다.

기업 총수들을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불러 윽박지르기도 하고,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한때 권력 실세들을 구속해 처벌을 받도록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합법적 권력의 기초 위에 행해진다. 또 이 권력의 행사는 그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하는 것이 기본 전제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우리 사회의 합법적 권력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강압적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한 사례다.

우리 헌법(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신분은 법률로서 보장된다고 돼 있다. 그런데 합법적 권력이 아닌 강제적 권력이 동원되고,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이라고 찍히면 이유도 모른 채 수십년간 몸담았던 공직에서 그날로 물러나야 하는 폭압적 권력이 행사됐다.


또 대통령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CJ 등 기업 총수를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지시하고 그 수석은 "왜?"라는 이유도 물어볼 수 없는 처지였다며 강제적 권력을 행사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물론, 현장에서 고생한 공무원들(이석수 전 청와대 감찰관, 박관천 전 경정, 노태강 문체부 전 국장과 과장, 국정원 문화소통관) 등 바른소리한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찍어냈다.'

또 최순실의 조카인 장승호에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을 받는 외교관 경험이 전혀 없는 현지 장기 체류인을 '베트남 대사'라는 자리에 앉히는 기행(奇行)을 펼친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대사는 자신이 왜 대사가 됐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청문회에서 밝히기도 했다. 공무원들에게 행해진 횡포는 '찍히면 끝이다'는 공포를 이용한 강압적 권력을 행사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나라의 살림을 논의해야 할 경제수석도 "대통령에게 왜라고 물어볼 수 있는 청와대 환경이 아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로 논란을 일으킨 장시호 증인은 김종 문체부 차관의 윗선이 누구냐는 국회 청문위원의 질문에 "윗선은 최순실 이모다"라고 말하는 어이없는 말을 쏟아내는 게 현실이다. 최순실이 박 대통령과 동등하거나 국가 서열이 더 위로 느꼈다는 그의 측근들의 말에서는 "이게 나라냐"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 아무리 간 큰 기업들인들 이들의 강제적 권력을 견뎌냈겠느냐 하는 소리도 나온다.

박원호 전 승마협회 전무는 기업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문체부 장관이나 공무원들 (목이) 날아가는 것 보지 않았느냐"며 협박을 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여든을 눈앞에 둔 기업 총수를 포함해 9명의 재계 총수들이 13시간 가까이 청문회장에서 '벌'을 서고 있는 동안 얄팍한 법 지식을 앞세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합법적 권력인 국회의 출석요구서나 동행명령서를 수령하지 않기 위해 장모와 피해 다니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강제적 국가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도, 합법적 국가권력을 우습게 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상 독재세력은 강제적 권력에 집착하고, 민주적 세력은 합법적 권력에 기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국가의 권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확실히 보여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산업1부 재계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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