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세필(細筆) 쓰기의 새로운 가치

머니투데이 박덕준 외부기고가 | 2016.12.06 10:08

[인문학코너]

세모에는 마음을 담아 세필쓰기로 안부를 전하자
▲(세필쓰기모임 교본자료, 박덕준 임촉소첩 )
靑松本無華 푸른솔은 본디 꽃이 없으니
安得保歲寒 겨울이라고 어찌 보호할 것이 있으리

어느덧 한 해가 다 저물어 가고 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보면서 지나간 시간의 빠름에 새삼 놀란다. 거리에는 화려한 조명아래 캐롤송이 들리는 따뜻한 계절이면서도 마음 한 켠 에서는 텅빈 무언가를 느끼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만 그런지는 몰라도 이맘때가 되면 꼭 뭔가를 쓰고 싶어진다.

세모의 계절에는 글귀를 하나 써보기로 하자. 먹물에 붓을 적셔 자신의 마음을 달래보기도 하고 지인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도 하는 그런 일이다. 단체 문자하나로 일시에 안부를 전하는 것도 좋지만 한 번 쯤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에게는 30년 지기 친구가 있다. 물론 그 친구는 세필쓰기를 좋아하지만 때가되면 꼭 장모님께만은 글귀쓰기를 놓치지 않는다. 역시 잘 쓰는 것도 좋지만 때때로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관계를 따뜻하게 한다.

독자들 중에도 이미 그런 분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시도를 하고 또는 포기도 하고 그랬을 것이다. 글귀를 쓰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붓 크기의 선택이다. ‘큰 붓’이 아니고 ‘작은 붓’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현판 쓰기와 같이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작은 붓’ 쓰기가 일반적이었다. 편지글 쓰기, 책 쓰기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작품이라도 두루마리(卷)에 쓰기 등이 바로 이‘작은 붓’(細筆 : ‘세필쓰기’라 칭함 )으로 쓰기에 해당한다.

우선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또박 또박 써나가는 것이다. 교본을 보고 쓰더라도 똑 같이 따라 쓸 필요는 없다. 문자만 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도 좋다. 형태를 꼭 아름답게 해야 할 필요도 없다. 담은 마음이 아름다우면 그만이다. 이를 “다짜고짜” 쓰기라고 불렀다. 한 두 번 참석했던 분이라 하더라도 그 후 혼자서도 곧잘 쓰기를 한다.

일상의 소소한 마음을 담아내는 것은 세필쓰기의 오래된 가치
붓과 먹과 종이 즉, 재료와 도구만 해도 낯설어 선뜻 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세필(細筆)쓰기’에 필요한 몇가지를 정리해 본다.

세필쓰기는 준비가 간단하다. 작은 붓과 먹물준비가 쉽고 종이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 글씨쓰기에 필요한 주변 정리가 매우 단순하다. 세필쓰기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장점은 먹물을 직접 갈아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큰 붓 쓰기’에는 많은 먹물이 필요한데 초심자들은 그 준비가 어렵고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직접 갈아 만든 먹물 대신 기성품으로 구입한 먹물(먹즙)을 사용하게 된다. 사실은 기성 작가라 하더라도 ‘먹즙’으로는 서법 고유의 ‘먹물’의 느낌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세필쓰기는 직접 갈아서 만든 먹물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세필쓰기에 필요한 작은 붓, 미니 벼루)
뿐만 아니라 세필쓰기는 붓이 작기 때문에 붓을 움직이는 법(운필법)을 쉽게 익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중에서는 큰 붓 쓰기만 성행하고 있으며 오히려 세필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은 현재 서예가 중에 ‘세필쓰기’로도 작품으로 써내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

요약하자면 세필쓰기가 큰 붓 쓰기에 비하여 더 쉬워야하고, 더 일반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음악에서 마치 대중음악은 사라지고 오페라 아리아만 남아 있는 그러한 기현상이다.

세필쓰기란 소소한 일상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상대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그런 쓰기가 가능한 일이다. 이는 오랜 동안 인정받아왔던 서법의 고전적인 속성에 속한다. “서법이란 마음을 풀어놓는 것”(書者散也) 라거나, 가장 잘 쓰여 질 때는 “우연히 쓰고 싶을 때” (偶然欲書)라고 하는 말들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래된 아날로그적 형태 인 ‘세필쓰기’는 오히려 오늘날과 같은 첨단시대에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필(細筆)쓰기에 숨은 비밀은 종이에 있다.
70년대 이후 공모전에만 매달려온 서예계는 세필쓰기를 더 어렵게 하였다. 획일적으로 정한 큰 종이에 큰 붓으로만 쓴 작품에만 집중한 나머지 작은 붓으로 쓰는 세필쓰기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공모전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종이의 문제다. 물론 시작은 공모전 이전부터 이지만 이즈음 종이는 한지(韓紙)에서 화선지(畵宣紙)로 바뀌었다. 종이와 서법의 관계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필자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큰 붓과 작은 붓 그리고 한지와 화선지, 이 네가지 경우가 각각 다른 특성이 있다.

화선지 특징은 번짐을 위주로 한다. 그동안 화선지에 쓰는 글씨는 번짐 현상을 주된 속성으로 활용해 왔다. 따라서 붓을 사용하는 운필법 또한 여기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화선지가 나타나기 이전 한지는 다르다. 한지는 번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화면에서 글씨가 추구하는 것은 필획의 번짐 현상이 아니라 필획의 기세(氣勢)였다. 따라서 운필법 또한 번짐 표현에 익숙해진 나머지 기세 표현에는 부족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한지에서는 더 정밀한 운필법이 요구된다. 먹물이 한지 종이에 깊이 침투하지 않고는 기세를 표현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큰 붓으로 화선지(畵宣紙)에 쓰기는 익숙하지만 큰붓으로 한지(韓紙)에 쓰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추사선생의 활동 시기만 해도 글씨쓰기에 사용된 종이는 화선지가 아닌 한지였다. 그때는 큰 붓으로도 잘 쓰고 있었던 한지인데 지금은 왜 안 될까? 불과 50~100년 사이의 일이다.

몇 년전인가 어느 한지가 많이 나는 고장에서 한지를 서예전문 종이로 개발하기 위하여 번짐이 가능하도록 연구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요한 포인트를 못찾고 있다는 말이다. 종이를 바꿀 것이 아니라 필법을 다시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추사선생의 서법에서 볼 수 있는 종이에 먹이 깊게 침투하는 현상, 이는 선생의 서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가야할 부분이다.

▲(한지에 큰 붓, 박덕준 作,
豪心墨意 호심묵의 29.5 X 38, 2012)
▲(화선지에 큰 붓, 박덕준 作,
帶月 대월 36 X 48, 2009)


그러나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큰 붓 쓰기가 아니라 세필쓰기이다. 이제 세필과 화선지 또는 세필과 한지의 경우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세필쓰기에서 종이는 화선지가 아니라 한지를 사용해야 한다.

앞서 서예가들이 세필쓰기가 어렵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세필에 화선지를 사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화선지는 그 번짐의 특성 때문에 작은 세필의 필치를 섬세하게 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 필자가 세필모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점이 바로 이 종이 부분이다. 모임에서는 연습을 위하여 한지대신 누런 봉투종이를 이용하였다. 종이 선택만으로도 이미 많은 부분 해결되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종이에 대하여 몇가지 시도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이 서류봉투종이이다. 한 때는 봉투종이를 다양하게 이용하여 세필글씨를 많이 썼고 이 종이에 쓴 글씨작품으로 전시회(제 4회 개인전)를 한 적도 있었다.

봉투종이는 먹을 흡수하는 정도에서나 또는 번짐이 없다는 점에서 한지와 거의 흡사하다. 발묵 또한 한지와 유사한 성질이 있어 나름 아취도 있고 또 손쉽게 구입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초심자에게 한지대신 봉투종이를 사용하도록 권장하였다. 지금 까지 세필쓰기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많은 분들이 꼭 화선지에 쓰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한가지 유념할 것은 화선지에는 세필쓰기가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과 화선지에 쓰는 그 방식 또한 전통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세필쓰기의 필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필법이란 붓을 사용해서 글씨를 써나가는 법을 말한다. 그러나 좀더 넓게 해석하면 그것은 글씨를 쓰데 필요한 필법과 묵법 즉, 필묵법을 말한다. 필자가 줄곧 언급하는 서법 유삼, (書法有三 - 1文章, 2文字, 3筆墨法)중 세번째 필묵법이 바로 그것이다. 세필쓰기는 필묵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큰 붓 쓰기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붓을 움직이는 원리, 먹을 사용하는 용묵법, 뿐만 아니라 글씨가 예술적 차원이 될수 있는 관점에서도 큰 붓 쓰기와 세필쓰기는 별 다른 점이 없다고 본다.

이점에 대한 추사선생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추사선생은 권돈인에게 보낸 한통의 간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여기서 말하는 ‘간찰(簡札)’이란 편지글이란 뜻으로 곧 ‘세필(細筆)쓰기’에 해당한다. 완당선생전집 권3 ‘여권이제 33’( 與權彝齋[三十三]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


“고인(古人)들은 글씨를 쓰는 데 있어 간찰(簡札)이라는 한 가지 체식이 따로 없었습니다(古人作書。別無簡札一體). 순화각첩(淳化閣帖)에 진인(晉人)들의 글씨가 많은데, 거기서도 간찰을 별도로 취급한 적이 없었습니다. (如淳化所刻。多晉人書。未甞專主簡札)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是吾東之惡習也) 나의 글씨는 비록 70년 동안에 걸쳐 10개의 벼루를 갈아 닳게 했다거나 천여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나(吾書 雖不足言。七十年。磨穿十硏。禿盡千毫。)한번도 간찰의 필법을 따로 익혀본 적이 없습니다.(未甞一習簡札法) 진실로 간찰이라고 하는 하나의 체식이 따로 있는 줄을 모르는데(實不知簡札另有一體式) 제게 와서 글씨를 요구하는 자는 매양 간찰을 써 달라고 하므로 감히 하지 못한다고 거절합니다. (來要者輒以簡札爲言。謝不敢)그 중에 승배(僧輩)들이 더욱 심하게 간찰을 요구하고 있으니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而僧輩尤甚於簡札。莫曉其義諦也)”。
추사선생의 푸념 섞인 언급이다. “글씨를 주문하는 사람의 의도는 내 충분히 알겠다. 그대가 원하는 글씨를 써주마. 그런데 그 ‘간찰체’라는 그런 말은 없다네.” 이렇게 말 하고 있는 선생의 심정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오죽 했으면 “내 70평생 동안 글씨를 썼지만 그런 간찰의 법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까. 그러나 선생이 남긴 간찰은 사실 어느 누구보다 많다면 그 간찰의 법은 어디서 온 것일까? 큰 붓 쓰기와 작은 세필 붓 쓰기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70년 동안에 걸쳐 10개의 벼루를 갈아 닳게 했고 천여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으나”


▲(추사 김정희 간찰 ‘磨穿十硏。禿盡千毫’ 부분 )


이부분은 추사선생과 관련하여 세간에 이미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벼루10개를 구멍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애야 한다. 글씨를 쓴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나는 어떤가? 가진 벼루가 열 개 정도는 된다. 하지만 아직 한 개도 구멍 낸 것이 없고 멀쩡하다. 이거 어쩌나, 앞으로 십년 더 지나도 한 개 정도가 구멍 날까 말까 한데... 추사는 어떻게 10개를 구멍 냈을까? 이게 가능한 일일까?

최근에 우연히 이 문장의 원문을 보게 되었다. 그 문장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그곳에 답이 있었다. 필자는 추사의 의도를 기존 내용과 좀 다르게 해석하였다. 벼루10개를 닳아 구멍나게 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단지 평생에 걸쳐 많이 썼음을 비유적으로 강조했을 뿐이다. 아래에 양자의 해석을 비교하여 게재한다. 이부분 제현의 질정을 바라는 바이다.

(원문) 吾書 雖不足言。七十年。磨穿十硏。禿盡千毫。未甞一習簡札法。
<고전번역원 해석> : “나의 글씨는 비록 말 할 것도 못 되지만, 70년 동안에 걸쳐 10개의 벼루를 갈아 닳게 했고 천여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으나 한 번도 간찰의 법칙을 익힌 적이 없어”
<필자의 해석> : “나의 글씨는 비록 70년 동안 10개의 벼루를 갈아 닳게 했다거나 천여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고 (그렇게 까지)말하기에는 부족하나 한 번도 간찰의 필법을 따로 익혀본 적이 없습니다.”

독자여러분께 드리는 필자의 세모지정(歲暮之情)
세필쓰기의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전문 서예가들에게는 자기점검이 필요한 부분이다. 큰 붓으로 잘 하는 서가라면 세필 또한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인 독자 여러분은 여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자유롭게 했으면 한다. 오히려 그런 점이 세필쓰기의 새로운 가치에 더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연하장 글귀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봉투에 넣어 전달할 때 그 봉투에도 글씨를 써넣어도 좋다. 설날 세뱃돈을 이런 봉투에 넣어 준다면 받는 사람의 마음도 더 흐뭇할 것이다. 아래는 수년전 딸아이가 아직 어릴 때 세뱃돈을 넣어 준 봉투다. 물론 봉투도 직접 만들고, 뒷면에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의 이름도 쓴다.
▲(수년전 딸아이에게 준 세뱃돈 봉투. 澹然(담연: 담담하고 그러하게)

최근들어 세상이 어수선 하지만 정도(正道)로 나아가는 과정이려니 그 또한 필요하다. 그럼에도 다가오는 세모에는 한 번쯤 이런 세필글씨를 써보는 여유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필자의 작은 글귀로 독자여러분을 위한 세모의 뜻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지난 2월호에 소개했던 소동파의 편지글 중 일부라고 알려진 세모의 구절이다.
▲(紙窓竹屋, ‘더리더’ 독자들께 드리는 필자의 글귀.
커피를 내린 후 거름종이에 먹으로 쓴 세필)

한 해가 다 저물어 갑니다.(歲行盡矣 세행진의)
창 밖에는 비 바람이 처연하고(風雨凄然 풍우처연)
종이 바른 창문 대로 엮은 집에(紙窓竹屋 지창죽옥)
등불만 푸르게 빛나고 있습니다(燈火靑熒 등화청형)

복 많이 받으십시오. 박덕준 드림

(인사말) 거의 일년동안 연재하던 이글을 이번 달로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실제 작업하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려고 했습니만 많은 부분 아쉬움이 남습니다. 졸고를 읽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지면을 허락해주신 ‘더리더’ 편집장 및 관계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박덕준 배


▲항백 박덕준


항백 박덕준


서법가로서 현재 거의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추사 김정희의 필묵법을 복원하여 계승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한자의 축소 생략원리와 초서의 기원을 탐구하여 초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2008년부터 2년마다 개인전을 열어 2014년에 제 4회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전라북도 세계서예비엔날레 본전시 초청(2007), 국제서법가협회전(2013 광주), 강암연묵회(2015 전주) 등 단체전에 참가하고 있다. 저서에, 추사의 필묵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필묵법 지침서로 정리한 “필묵법산고”(筆墨法散稿 2012 삼근재)가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더리더(theLeader)에 표출된 기사로 the Leader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 더리더(theLeader) 웹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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