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푸른 바다의 전설'과 기업인 국정조사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 2016.12.02 15:53

무죄추정의 원칙 인식해야...죄인 취급하며 혼내기식 국정조사는 자제해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이민호(극중 허준재 역)는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헤라클라스 등대 앞에서 인어인 전지현(극중 심청 역)에게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여기가 세상의 끝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어인 전지현은 바다를 바라보며 "여기가 세상의 시작인데..."라고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자신이 속한 상황에 따라 사물을 보는 관점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는 6일 최순실게이트와 관련 기업 총수들을 대상으로 한 국정조사의 준비 과정을 보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라는 두 축이 서로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뭍에 사는 사람이 바다속 환경에서는 살 수 없고, 상상의 캐릭터인 인어도 뭍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가능한 것으로 이해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유리한 사실만을 받아들이는 확정적 편향에 빠지기 쉽고, 결국 그것은 신념이 돼 그 어떤 것으로도 바꾸기 힘든 '교리'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사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법안의 근간에는 경제권력을 정치권력 아래에 여전히 두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정치권력의 기반이 국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경제도 국민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하지만, 정치가 국민과의 괴리가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이 절대적 선은 아니다.

'경제권력이 망나니처럼 날뛰니 정치권력으로 컨트롤해야 한다'는 논리는 정치권의 능력과 순수성이 입증될 때야 가능하다.

기실 경제권력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SK LG 롯데가 아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기업이 어떻게 하더라도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망한다.

우리의 정치 권력은 그동안 이런 시장의 시스템을 인허가권이라는 강력한 장치로 공유하며 향유하거나, 규제라는 족쇄로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해왔다.

일각에선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기업이 피해자 코스프레(분장 놀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상 공범인데 피해자로 행세한다고 주장한다. 책에는 누구도 범인으로 확정되지 않는 한 '무죄'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하는 말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범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기업을 '피의자'로 확정지어 주장하는 것도 위험하다.


이번 국정조사에 또 다시 우려되는 장면들은 국회의원들이 국조장을 기업에 대한 일방적 비난이나 자기 PR(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기)의 장 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나 설명의 기회를 주지 않는 말 끊기 등은 진실을 추구하려는 국정조사의 취지와 어긋난다.

또 질문도 하지 않을 대상을 장시간 '벌 세우는' 일 등은 자제해야 한다. 현대차 그룹은 고령에 심장질환이 있는 정몽구 회장의 위급사항에 대비해 '응급차'를 대기시키고, 강남성모병원과 핫라인을 연결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내년이면 80세가 되는 정 회장을 불러낼 수 있는 힘이 국회에 있다는 권능을 보여주고 싶은지 모르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들뿐더러 역효과가 클 듯 싶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자신들이 뽑아 놓은 공복들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최근 한달여 동안 보여줬다. 100만개 200만개의 촛불을 손에 들고, 각자의 주장을 함에 있어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고, 비폭력을 통해 '폭력'보다 더 무서운 힘을 보여줬다.

여의도의 선량들도 자신들에게 권한을 위임한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들을 의무가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원 본인이 듣고 싶어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해준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그동안 자랑스러워했던 자신들의 회사와 관련해 최근엔 주변 지인들과 얘기 나누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다. 각 회사의 총수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죄인 취급 당하는 모습을 앞두고는 더 그렇다. 잘못된 데이터나 엉터리 팩트로 윽박지르는 모습이 생중계되면 그 각인효과는 어떤 사실로 해명하더라도 지우기 힘들다. 전세계 경쟁자들은 이를 호기로 활용할 게 뻔하다.

최근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평가손실만 5900억원에 달한다는 오보는 사실과 상관없이 전 국민의 뇌리에 사실로 이미 굳어졌다. 계산을 잘못한 것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 프레임을 깨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의 대리자인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의 자질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때 투사로 이름을 날렸던 한 정치인은 수감 중 TV 화면에서 본 배우 김혜자씨의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제목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자신의 투쟁 방법과 노선을 '어떤 폭력도 거부한다'는 '비폭력'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이번 국정조사는 정치권력이 경제계에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대신 묻고, 성실히 답을 듣는 자리다. 이게 수준 높은 국민을 둔 대한민국의 정치권이 해야 할 자세다.
산업1부 재계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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