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 역사교과서, 박근혜 기관지 '근화보' 토대로 만들었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김유진 기자 | 2016.11.30 16:17

역사교과서와 근화보 내용 비교해보니…"이 땅의 풍요, 아버지 덕분" 혁명공약 합리화만

지난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가 1989년 창간된 박근혜·최태민을 위한 기관지로 평가받는 월간지 ‘근화보’(근화봉사단 기관지)와 내용 구성이나 전개 방식에서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근화보가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관과 철학,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합리화를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훼손보다 경제 발전을 앞세운 국정 역사교과서가 근화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거세지고 있다. 근화보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늘어놓는 각종 ‘해명’에 맞추기 위한 ‘근거’로 국정 역사교과서가 집필됐다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근화보는 89년부터 1년간 총 15호까지 발간된 후 폐간된 월간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는 주제의 창간호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버지 매도는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는 창간호 6~7면에서 “아버지가 그렇게 매도된 것은 우리나라 전체로 볼 때 정신적으로 손해와 피해를 입었다”며 “오늘날 이런 혼란과 무질서를 겪는 중요한 이유는 역사 왜곡에 있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도 젊은 세대에게 반발과 멸시를 당하는 것이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균형 잡힌 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며 국정화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아버지를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15년 전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지난 28일 공개된 국정 고교 역사교과서 '한국사'의 표지(왼쪽)와 1989년 창간된 박근혜·최태민을 위한 기관지 '근화보'(근화봉사단 기관지) 창간호.


‘역사 왜곡’에 대한 박 대통령의 뿌리 깊은 인식은 창간호와 제3호, 제11호에서 또렷이 나타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욕을 먹고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결정을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안보를 이용했다’고 자라는 세대에게 알아듣게 하는 게 얼마나 큰 왜곡이에요?”(창간호 12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풍요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큰 지혜와 밤잠을 못 이루던 고뇌의 과정에서 얻은 풍요의 결실이에요.”(제11호)

이런 철학의 토대 위에서 나온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반영하듯 편집 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

역사교과서 한국사 260쪽에는 ‘5.16 군사정변의 주도 세력은 혁명 공약을 발표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군사정부는 반공을 중시하고 경제 개발에 주력할 것임을 밝힌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군사정부를 설명하는데 독재 행위에 대한 구체적 묘사보다 ‘실시했다’같은 완만한 부정어 결어가 곧잘 쓰였다.

이 내용의 ‘해명’은 근화보 창간호 6면에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는 5.16이 말하자면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믿고 있다”며 “아버지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한반도가 아버지가 만들어간 방법과 아버지가 한반도를 만들어간 방법,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만 바른 평가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16을 비판하고 심지어 매도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 땅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나라가 없어지는 판에 민주주의를 중단시켰다 하는 얘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근화보에 실린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진돗개를 쓰다듬고 있는 사진. 최근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를 호랑이에서 진돗개로 바꾸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이 인터뷰에서 질문자가 ‘그 공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돌아가야 하느냐’고 묻자,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5000년 동안 가난해서 많은 고생을 하고 수모를 당했다”고 했다. 질문자는 이어 ‘5.16은 전두환 등으로 이어져 군사독재 출현의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그런 억지 논리가 어디 있느냐”며 “오죽하면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는 것이 혁명공약으로 나왔겠느냐”고 말했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나온 뒤 거의 누구나 동일하게 비판하는 지점이 바로 ‘박정희 찬가’라는 점”이라며 “유신 부분에 ‘독재’라는 표현이 빠지고, 혁명공약과 같이 다른 교과서엔 없던 내용도 들어가면서 근화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구성으로 채워진 꼴”이라고 해석했다.


역사교과서 266쪽에는 ‘정부는 ~시위를 진압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정권 내부의 갈등이 심해졌다. 시국 수습 방안을 놓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이 갈등을 빚던 중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김재규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기술됐다.

근화보 창간호 5면에서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문책을 받은 정보부장이 충성심 경쟁으로 인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그런 것이 복합돼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5명의 부하까지 대동한 치밀한 계획이라는 것에 대해 그는 “그런 식으로 배신한다는 것은 패륜”이라며 “하루 전에 계획했다 해도 그건 우발”이라고 아버지 사건의 계획성을 부인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김재규의 10.26 사태는 논란의 여지 없이 계획된 사건이고, 이를 우발적 범행으로 서술하는 태도는 특정한 개인의 입장을 반영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교과서의 사유화를 통해 역사를 명백히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근화보 창간호 11면 지면. "이런시절을 살다보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님의 뜻을, 왜곡됐던 것을 바로 잡아서 빛내드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이 담겨 있다.


265쪽 ‘~1971년 반공을 강조하며 정권을 유지하던 박정희 정부는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1월 21일 ~유신헌법이 확정되었다’는 내용과 관련해서 박 대통령은 근화보에서 이미 “유신과 자주국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위해 아버지가 유신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교과서 267쪽에 할애된 포항제철소는 근화보 3호 ‘중화학공업화의 주역 김재관 박사가 들려주는 포항종합제철의 잉태와 탄생’이라는 주제에서 “강력한 체질의 정부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기술됐다. 같은 쪽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정주영’ 역시 근화보 제10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편에서 “정 회장이 기억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곧 한국경제의 근대화”라며 “통치기간 나라를 어떻게 발전시켰느냐가 중요하다”고 적혀있다.

역사교과서와 근화보의 서술구조와 편집방식은 군사정변으로 시작해 혁명공약의 정당성, 독재정권이 이룩한 경제 산업의 성과 등 동일한 순서와 흐름으로 이뤄져 있다. 쿠데타라는 직접적 표현보다 정변이라는 넓은 의미의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기승전경제발전’으로 방점을 찍는 결말도 비슷하다.

박한용 연구실장은 “근화보에 나타난 핵심 키워드 ‘혁명공약’을 이번 교과서에서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반공과 우국지정을 정당화하는 방식”이라며 “역사학계에서 공동으로 지지하는 내용을 거부하고 역대 대통령 기술 중 박정희가 나라를 일으킨 과정만 10페이지에 걸쳐 소개하는 의도가 ‘제2의 유신’으로 회귀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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