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한진해운 음모론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 2016.12.02 05:23

[박재범의 브리핑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지난 5월 3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돌연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 땐 배경을 몰랐다. 반년이 지나서야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되는 그림이 그려진다. '설마'가 현실화된 순간, 상상의 나래는 펼쳐진다. 혹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도?'라는 질문은 자연스런 연상 작용이다. 실제 정권에 밉보인 죄로 산산조각난 그룹이 한 두 개였나.

"현대와 한진 중 정권에 잘 보인 오너만 살았다"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한진해운을 버렸다" "대우조선에 넣을 돈, 1/10만 넣었다면…" 등 제법 그럴듯한 '썰'이 나돈다.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해석이 흥미롭다. 음모론은 더 드라마틱하다. "그럴 줄 알았어"라는 세간의 반응까지 겹치면 의혹을 넘어 사실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기업 부실의 책임자는 정권의 피해자로 둔갑한다.

과연 그럴까. 기업구조조정을 담당한 이들은 모두 5월 3일을 기억한다. 조양호 회장의 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소식을 접하며 내심 기대를 건 날이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 개시 하루 전, 조양호 회장의 행보는 한진해운 사태 수습으로 읽히기 충분했다. '두 달' 만에 돌아온 답이라고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착각'했다. 속내는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두 달' 만의 대답이라고 느낀 배경 스토리는 이렇다. 시장에 한진해운 위기설이 나온 것은 4월말. 정부는 4월 26일 열린 산업구조조정협의체 회의 후 자료에서 한진해운 상황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현대상선뿐 아니라 한진해운도 어렵고 용선료 협상 등 자구노력을 전제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원칙을 밝힌다.


정부가 한진해운 상황을 파악한 시점은 이보다 앞선 3월 7일. 컨설팅 결과를 받아든 정부는 화들짝 놀란다. 현대상선 구조조정 관련 플랜A(자생)와 플랜B(법정관리)을 들고 노심초사하던 정부로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게다가 한진해운 상황이 현대상선에 비해 더 안 좋았다. 한진해운의 사전 보고는 없었다. 오히려 느긋했다. 한진해운은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액션 플랜 요구에 짐짓 여유만 부렸다. 3월 28일엔 이동걸 산은회장이 직접 조양호 회장을 만난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랬던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을 위해 올림픽조직위원장을 그만둔다고 했으니 금융당국 입장에선 반기고도 남을 일이었다.

이후 행보는 우리가 목격한 대로다. 용선료 협상, 해운동맹 협상 등에서 한진해운은 지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4000억원 유상증자안, 경영권 포기 등의 약속도 채권단은 믿지 못했다. 채권단이 믿지 않았다기보다 한진해운이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쪽이 맞다. 채권단 관계자는 "법정관리 후 500억원을 지원한다는 안건도 이사회에서 세 번 논의할 정도인데 4000억원 유증이 가능했겠냐"고 반문한다. 마지막까지 "사재 출연"이 아닌 "사재 출연 '추진'"이란 표현을 부여잡은 것도 한진해운이다. '사재 출연+감자'를 수용한 현대상선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잊을 만하면 재점화되는 구조조정 논란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잘 안다. 사무관 7년, 과장 3년, 비서관 2년, 장관 2년 등 구조조정만 14년인 임 위원장이지만 "상처가 된다"고 한다.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에게도 솔직히 고백한다. "매번 겁이 난다. 체한 것처럼 답답하다" "원칙을 지켜내는 것조차 무척 어렵고 고통스럽다". 첨예한 대립, 쏟아지는 비판이 무섭고 두렵단다. 그래도 그의 무기는 결국 '원칙'이다. 정치적 음모, 특혜 시비 등에 맞서는 유일한 방패이기도 하다. "원칙을 지키는 것 외에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후배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다". 실무자들도 논란이 빚어질 때면 자문한다. "잘못 한 게 없었나" "혹여 살릴 수 있었을까" 이들의 답도 하나다. "원칙이 유지된다면 결론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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