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된 아파트 단지…경계 허물면 서울이 다 나의 공간"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 2016.11.29 04:23

[피플]김영준 서울시 총괄건축가 인터뷰

김영준 서울시 총괄건축가 인터뷰. /사진=홍봉진 기자
공직 가운데 '총괄건축가'라는 직책은 서울시에만 있는 독특한 자리다. 시장 직속 비상근직으로 서울의 공공 건축물과 도시계획, 조경 등에 관한 전반적인 기획과 자문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인 '서울로 7017' 프로젝트와 세운상가 재생사업 등이 총괄건축가의 주요 기획 작품이다. 한양도성 복원, 한강종합관리계획 등 공공사업뿐 아니라 대규모 민간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총괄건축가의 자문을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디자인하는 자리인 것이다.

2014년 서울시 1대 총괄건축가로 승효상 건축가가 위촉된데 이어 지난달 김영준 건축가가 2대 총괄건축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공공영역에서는 '서울로 7017' 등 주요 프로젝트가 본격 진행 중이고, 민간영역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어 여느 때보다 총괄건축가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그는 먼저 35층 재건축 규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현재 서울의 재건축 사업에서 가장 큰 이슈는 35층 건축 제한을 푸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시가 2014년 발표한 '2030 서울플랜'에 따르면 한강변을 포함 제3종일반주거지역에 짓는 아파트는 최고 35층을 넘을 수 없다. 남산이나 한강 등 서울의 주요 경관을 사유화하는 건축을 제한하겠다는 조치지만 재건축 조합은 사유재산 침해라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김 총괄건축가는 이런 갈등이 결국 도시라는 공간을 함께 사는 곳이 아닌 사적 공간으로만 인식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질 때부터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태생적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김 총괄건축가는 "예전 서울이 확장하던 시기에는 정부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도시 개발을 민간의 영역으로 맡겨 버렸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압구정지구, 반포지구 같은 아파트지구"라며 "민간 주도로 이뤄지다보니 공간의 사유화 현상이 강해졌고 지금 아파트지구에서 나타나는 문제, 담장을 치고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단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이 도심 속 '섬'이 됐다는 지적이다. 아파트를 살 때도 모델하우스에 전시된 공간이 주요 선택 기준이다. 주변 환경보다 내가 살 공간이 중요한 것이다. 사적 영역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레 층수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그들만의 '성'을 쌓고 외부와 소통하지 않으니 남는 것은 '전망'밖에 없다.

김 총괄건축가는 "프라이버시를 강조할 수록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전망에 대한 욕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50층으로 지어도 전망이 좋은 집은 얼마 안 되는데 그 소수를 위해 늘어나는 공사비나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좋은 방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시민들의 사적 욕망을 아예 억누를 수는 없는 일이다. 총괄건축가는 사적 욕망과 공공성을 절충할 수 있는 모델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자리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 총괄건축가는 "예를 들어 단지를 만들 때 한 단지에는 수영장을 짓고 다른 단지에는 도서관을 지어 서로 공유하도록 경계를 허물면 비용도 줄이고 주민 간에도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며 "또 단지를 열어 놓으면 한강이나 남산, 공원, 모든 공공시설이 다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근현대 건축사를 새롭게 쓴 건축가 김수근의 마지막 직계 제자다. 1980년대 후반 김수근의 공간연구소에서 일하며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고 한다. 김 총괄건축가는 "건축가라는 직업은 단지 집을 짓거나 건축주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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