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오늘… 法 첫 '존엄사 인정' 판결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 2016.11.28 06:00

[역사속오늘] 법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첫 판단…웰다잉법 2018년 시행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

8년 전 오늘(2008년 11월 28일) 한국에서 처음 '존엄사'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존엄사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수많은 논의 끝에 올해 1월 허용하는 법이 통과돼 시행(2018년)을 앞두고 있다.

생명 존중이란 철학 아래 환자·가족들의 '죽음을 맞이할 권리'와 인간(의료인)이 지켜야 할 '생명 유지의무'는 팽팽히 맞섰다. 2009년 5월 대법원도 존엄사를 인정했고 국회 발의·논의를 통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하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국내 첫 '존엄사 인정' 판결을 받은 김모 할머니(77·사망 당시)는 2008년 2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종양 조직 검사를 받던 중 과다 출혈로 저산소성 뇌 손상을 입고 뇌사(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가 평소에도 '정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길 원했다는 주장을 토대로 치료중단을 요청했지만 병원이 생명유지 의무를 이유로 이를 반대하자 소송에 나섰다. 가족들은 그해 5월 병원을 상대로 '치료중지 가처분'과 민사소송,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치료중지 가처분에 대해선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가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현장검증과 다른 병원 2곳(서울대·서울아산병원) 감정의뢰 후 민사소송(민사 12부, 김천수 부장판사)에선 존엄사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가족들의 요구보다는 김 할머니의 '치료중단 의사'가 크게 작용했다는 판결 취지를 밝혔다.

재판부는 "현재의 절망적 상태나 기대여명기간, 현재 나이 등을 고려할 때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사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이후 존엄사 법제화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병원은 이에 불복했으나 2심(서울고등법원)과 3심(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다만 병원은 존엄사 판결 이후 7개월간 발생한 치료비 8600여만원에 대한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1월 유가족들의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2009년 법원이 처음 존엄사를 인정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의료계는 찬성의 뜻을 밝히며 "법제화로 사회적 혼란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으나 일부 시민단체 등은 생명 윤리를 문제로 강력한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특히 타인이 한 인간의 '죽음을 결정할 수 없다'는 윤리적 문제도 쉽게 풀 수 없는 문제였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의견·토론, 세계적 추세 등 다양한 접근이 이뤄졌지만 쉽게 합의점을 찾진 못했다.

1997년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퇴원시킨 부인·의사가 살인 방조죄로 집행유예 선고(2004년)를 받은 일명 '보라매 사건'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뇌수술받은 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를 부인의 요구로 퇴원시켰다 결국 사망해 모두 처벌받은 사건이다.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소극적 존엄사'를 인정하는 추세로 가닥이 잡혔고 올해 2월 일명 '웰다잉(Well dying)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환자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일부 '적극적 존엄사(안락사)'까지 허용하는 등의 세계적인 추세도 반영됐다.

환자와 가족들의 의사가 분명하다면 법에 따라 극심한 고통이나 불치병(암·에이즈 등)에 대해 영양 공급·약물 투여를 중단할 수 있다. 법에 따르면 중단 가능한 의료연명 행위는 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 투여·인공호흡기 착용 등이다.

무의미한 치료행위로 심적·경제적 고통이 심한 가족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뜻도 담겼다. 다만 직접약물 등을 주사해 죽음을 앞당기는 안락사에 대해선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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