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세계

머니투데이 이영인 (필명)  | 2016.12.24 06:56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가작 '네번째 세계' <2> 괴물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AT. 3

오늘은 내부를 청소하고 자리를 정했다. 좁다란 곳이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생활은 된다. 죽는 것 보다는 낫겠지. 식량도 시스템도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이전의 일지들을 복구할 수가 없다. 내 기본 단말과 백업, 두 번째 백업까지 모두 날라가 버렸다. 필시 나중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래서 잠시 이전의 일을 갈무리해놓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갈무리를 한다.

24일 전, 우리는 이곳에 도착했다. 임무 내역은 평범한 행성 조사였다. 실제 환경과 자원보유량, 채굴 용이성 등 행성의 산업적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일은 딱히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작업은 매뉴얼과 기계를 통해 하는 것이라 기초학력만 있으면 이해한다. 그저 위험하고 더럽게 오래 걸릴 뿐이지. 한마디로 허드렛일이다.

이번 목표인 JK-152는 사전 탐사에 의하면 대단할 것이 없는 동네였다. 태양계 외딴 곳에 위치하고 있고, 탄소와 철이 많았고 대기는 있으나 산소, 물은 없으며, 일교차는 상대적으로 적은, 그러니까 뻔한 천체였다. 자기폭풍이 좀 많기는 하지만 이 시기에는 잠잠한 편이어서 탐사에 별로 큰 지장은 없어 보였다. 덕택에 이렇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지. 제기랄, 공부나 더 열심히 해서 사무직이나 할걸.

그 다음에는 뭐, 시아 이야기밖에는 없다. 이곳에서 시아를 발견했다. 시아라 이름붙인 것은 높으신 분이라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발견 자체는 정말로 대단할 것이 없었다. 위성 탐사 중 서반구에서 2m 남짓한 반구형 구조물을 발견했고 오퍼레이터인 스타니슬라프가 확인을 요청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그저 데브리인줄 알았고 재활용을 하거나 골동품으로 팔아먹으려고 회수를 지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데브리가 아니었다. 시아의 외형은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반구였다. 흠집없는 데브리는 있을 수 없다. 분석팀이 이것저것 분석해 봤으나, 외장이 놀랄 만큼 견고해서 드릴로도, 레이저로도 아무런 흠집을 내지 못했다.

우리는 괴상한 물건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기술지원팀에 알렸고, 기술지원팀은 우리에게 보다 전문적인 분석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에 따라 재분석을 실시한 결과, 우리 분석팀이 이 물건은 지구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시아가 외계의 제조물, 그것도 전자기기라는 것을 확인했다. 역사상 최초로 외계문명과 조우한 것이다.

이 때만큼은 다시 회상해도 아찔하다. 지금이야 별 볼일 없는 광부지만, 한때는 나도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꾼 시절이 있었다. 그 꿈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이야. 한 20년은 전에 포기했었는데.

그래, 그래서 나는 살아 돌아가야 한다. 이제야 꿈을 이루었으니까.

평범한 단순 노무가 즉시 초특급 프로젝트로 급반등했다. 먼저 모든 통신에 보안이 걸렸고, 오가는 정보들은 국제법에 따라 실시간 공개되었다. 엄청난 숫자의 축하 메시지가 들어왔고, 우리는 미친 듯이 들떠서 파티를 열었다.

라다는 말 그대로 며칠 밤을 지새우며 분석에 몰두했다. 불쌍한 녀석, 지구로 돌아가면 공학계의 신이 되었을 텐데. 라다는 시아의 입출력구조를 파악해냈고, 결국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시아가 컴퓨터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 팀원과 지구는 다시 한 번 난리가 났고, 컴퓨터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에게 컴퓨터 관리에 쓰이는 특급 프로그램들이 전송되었다.

그 중 하나가 리다리였다. 모 정부의 정보부에서 사용하는 암호 해독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이 사건 이전에는 존재조차 공개되지 않은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이것은 번역기와는 차원이 다른 물건으로 고대 언어, 프로그래밍 언어 등 인류사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언어를 수리논리학적으로 연구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원래는 사기업에 제공하지도 않고 민간인이 만질 수도 없는 물건이라고 했었다.

명제를 숫자로 치환하여 유의미한 명제의 경우의 수를 찾아 번역한다는데, 자세히는 모르겠고 수학적인 얘기가 나왔었다. 이론상 시간만 있으면 인류가 만든 모든 언어체계를 번역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물건이다. 이 놈이 대단한 것이 설령 데이터베이스에 전혀 없는 언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의미값이 있다면 문법상으로 말이 되는 것들을 추려내어 뽑아 준다고 한다. 물론 완벽하게 번역이 되는 것은 아니고, 키워드를 간추리면 그 다음부터는 사람 손이 필요한 것 같지만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건 매한가지지.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백업으로 물리학과 생물학 같은 기초과학과 공학에 대한 자료들, 그리고 인문학 자료들이 잔뜩 왔다. 존재하는 모든 도서를 통째로 전송한 수준이다. 이 자료들을 참고하면 리다리의 번역 속도가 향상된다 하며, 혹시라도 새로 발견된 사항이 있다면 굳이 몇 시간씩 답신을 기다리지 않고 여기서 전문서적을 참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받아 시아의 프로그램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기술지원팀의 장담처럼 의외로 깔끔하게 호환되었다. 예전에 설명을 들었는데, 대충 이야기가 기본 구조는 똑같이 이진법을 사용하며 이것이 전기를 사용하는 컴퓨터를 상상했을 때 가장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구조라 한다.

OS와 같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당연히 다르며, 코딩이라던가 하는 것들도 아주 차이가 나서(자세히 설명해줬으나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컴퓨터에 쓰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기는 하다) 이것을 해석하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초기 해석은 경우의 수가 너무 어마어마해서(10의 수십제곱 같은 정신나간 단위가 튀어나오더라) 큰 의미가 없었다. 이 해독은 스티브와 곤살로가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작금의 상황에 참으로 다행인 것이, 이 때 동봉된 자료들 중에는 토목공학같은 내용이 있었고 이것이 산사태에 파묻힌 현시점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사건 당일부터 곤살로가 이 부분을 열심히 공부하며 도움될 만한 것을 찾아내었고, 크게 무언가를 바꾼 것은 아니지만 지반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비교적 균일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분석팀이 분석을 하는 와중에, 우리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대통령과 수상들의 축하 인사에 화답하고 인터뷰하며 희열에 차서 떠들어댔다. 그러다 사흘 전,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하, 다 죽었구나. 그렇게 신나게 웃고 떠들던 놈들이 다 죽었어.

더 뭐라고 쓰기가 힘들다. 지금 시아는 스티브가 번역하는 중인데 컴퓨터의 성능이 좋지 않아서인지 처음과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아마도 솔데로카가 오기 전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을 것 같다.


AT.4

이번 탐사는 내 인생에 일어난 가장 끔찍한 일이다.


저 괴물단지를 주운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씨발, 이건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죽었고 지옥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저 기괴한 물건이 나에게 악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어제 함선 내 공간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생명유지시스템을 돌렸으나 망가졌다. 생체 감지 센서는 어느 정도 살아있었지만 프로그램이 망가져 있었기에, 스티브가 급한 대로 센서를 인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생존자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생명체 신호가 잡혔다. 그런데 모든 곳에서, 말 그대로 모든 방과 공간에서 수천 개의 신호가 잡혔다. 당연히 프로그램의 문제이거나 충격으로 기계가 오작동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스타니슬라프는 누군가가 살아있는데 그게 오류가 나서 저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추측했고, 생존자의 가능성이 있다면 위험하지만 밖에 나가 조사를 해 봐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더불어서 장비나 여타 쓸 만한 것들이 있으면 좀 챙겨오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더글라스와 제이스를 데리고 밖에 나왔다.

그런데, 아,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함선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토사가 바닥 가득 들어와 있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토사의 사이사이에, 무언가가 가득 달라붙어 있었다. 쓰면서도 욕지기가 튀어나온다.

그것들은 대체로 회색빛이었다. 어떤 것은 혈관 같았고, 어떤 것은 근육덩이 같았다. 눈알같이 희번뜩하는 것도 있었고, 또 어떤 것은 그냥 살덩이 같았다. 이 모든 것이 한덩이로 뭉쳐져 있기도 했다. 뭉쳐 있는 것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나쁜 거미 알 같은 모양새였다. 처음에는 선원의 사체에서 떨어져나온 것인가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센서가 정확했던 것이다. 토사 속에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수백, 수천개가 텅 빈 함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천장과 벽면, 바닥까지 그것들이 달라붙지 않은 곳은 없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대로 탈출선으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몇 차례나 소독을 했다.

선원들은 우리의 설명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저스틴과 제이스는 다시는 밖에 나가지 않겠다 말했다. 처음에는 더글라스가 함선의 생명유지장치를 꺼버리자고 했지만, 혹시 아직도 진짜 생존자가 있다면 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선원들을 설득해서 다시한번 조사를 나가자고 하였다. 만약 생존자가 있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태일 것이고, 우리 생존을 위해서 구체적인 밖의 상태와 그 괴생명체에 대한 정보도 필요했다. 인원을 더 늘려서 스타니슬라프, 더글라스, 제이스까지 모두 나오게 했다. 다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시늉을 했지만 같이 나오긴 했다.

무기라 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곤살로와 스티브가 장비들을 가지고 날 쪽에 전기가 흐르는 창 같은 것을 만들어 주었다. 사람을 죽이는 수준은 아니고 기절시키는 정도였다.

정말 다행히도, 도처에 깔린 그 괴생명체들이 특별히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딱히 이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의 움직임에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끔찍했다. 그것들은 토사 위 뿐만 아니라 기계장비에도 거미줄이 개미집 위에 들러붙은 것처럼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창으로 그것을 찌르자, 개구리 뒷다리마냥 짧게 경련하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그 기괴한 모양새는 선원들의 전의를 상실케 하기 충분했다.

방 하나에서 데이빗의 시체에 그것이 융합한 채로 있었다. 마치 시체에서 버섯이 자라난 것처럼 데이빗의 시체 위에 그것들이 자라나고 있었고, 마침 먼지를 뒤집어 쓴 데이빗의 시체는 색깔도 비슷해서 데이빗의 몸과 옷에 거대한 종기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데이빗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고, 지독하게 역겨웠다.

그것을 보고 더글라스가 이성을 잃고 도망쳤다. 그러자 다른 선원들도 모두 비명까지 질러대며 탈출선으로 도망쳤고, 나도 공포에 휩싸여 같이 도망쳤다.

기다리던 곤살로와 스티브에게 끔찍한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우리는 침묵에 빠졌다. 떠도는 공포 속에서 아무도 더글라스를 겁쟁이라고 나무라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그것들이 우리에게 위협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기분상으로는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딱히 독성도 없어 보였고, 그것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 보였다. 함선의 생명유지장치를 끈다면 그들도 죽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했지만, 생명유지장치는 아직 끄지 않기로 했다. 생존자가 있다면 그 때는 정말 우리가 죽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대책은 내일 마련해야겠다. 일단 오늘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모두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먹게 하고(대부분이 어거지로 쑤셔넣었지만) 푹 쉬게 했다.

데이빗의 꼴을 보고도 그의 시체를 방치하고 왔다.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내일은 어떻게든 해야 하겠지. 선원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그 밖에 다른 시신이나 생존자는 찾을 수 없었다.

그것들은 뭐지? 이 별에 원래 있던 원시 생명체들인가? 생명체가 살 환경은 분명히 아니었을 텐데?

정상적인 상황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아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연관된 것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갑자기 발생한 폭풍, 마찬가지로 갑자기 발생한 괴생명체. 도저히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 변수가 너무 많아 판단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집에 가고 싶다. 가족을 보고 싶다. 평범한 대지에서 익숙한 공기를 마시며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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