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대통령의 장차관들 진퇴양난...내상은 깊다

머니투데이 세종=조성훈 기자, 유영호 기자, 김민우 기자 | 2016.11.21 18:30

참담함, 자괴감 등 토로... "묵묵히 업무에 매진할 것" 입장도

국무위원들이 15일 정부세종청사 국무조정실&middot;국무총리비서실 국무회의장에서 열린 서울-세종 영상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6.11.15/뉴스1 <저작권자 &copy;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검찰이 공소장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 게이트의 공동정범으로 규정한 뒤 정부 장차관들도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였다. 피의자가 된 대통령의 지시를 따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임무를 저버리고 그만둘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들은 현 정부에서 임명된 정무직 공직자라는 신분 때문에 공식적으로 입장표명을 삼가지만 내상은 깊다.

한 외청장은 “정말 이러려고 청장을 했나 싶을 정도로 충격과 자괴감이 몰려오고 국민들께 부끄러운 심정”이라며 “내가 동요하면 직원들이 더 흔들릴 수 있으니 겉으론 태연하게 있지만 밤이나 주말엔 극도의 허탈감이 몰려온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장차관들이 청와대 얘기는 가급적 피하는 분위기지만 속내는 비슷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자기가 직접 사익을 챙기진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직권남용이나 범죄공모 등 밝혀진 것 만해도 한두가지가 아닌데 죄의식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놀랍다”고 말했다.

한 중앙부처 차관은 “대통령이 이런 정도였나 싶어 참담한데 현 정부에서 장차관이 됐으니 일반 국민들처럼 똑같이 얘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호위무사처럼 아닌 것이 맞다고 할 수도 없어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교체될 예정인데다 현직 차관이 청와대 비서관 시절 미르재단 설립작업에 관여했다고 검찰이 밝힌 뒤 기재부는 더 침통한 상황이다.

한 기재부 간부는 “대통령이 이렇게 까지 했을 줄을 몰랐다”며 “그런데도 내려오지 않고 버티기를 하고 있으니...”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초유의 상황에서 어떤 공직자가 청와대 지시를 따르겠느냐”며 “더 버틸수록 국정에 혼란만 가중되고 대통령 스스로 마지막 남은 명예를 차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부처의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온 것들을 보면 좀도둑이 나라를 훔친 것 아니냐”면서 “요즘 거의 일이 안 돌아가고 결재는 차일피일 밀리는데 지금이야그렇다 쳐도 내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주요부처 장관들도 공소장이 공개되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총리-부총리 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은 사상 첫 피의자 신분인 대통령을 보필하게 된 것을 의식한 듯 침울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회의는 대통령 대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황교안 국무총리를 대신해 유 부총리가 주재했으며 사회부총리, 행정자치부, 국방부, 외교통상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등이 자리를 지켰다.

회의에선 조류독감(AI) 확산과 수능 복수정답 논란에 대한 수습책 마련과 국정혼란을 틈탄 북한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라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논의가 없었다. 22일엔 유 부총리 주재로 국무회의가 열리는데 회의실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런 때 일수록 동요하지 않고 업무에 매진해야 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정부부처 장관은 “일련의 정치적인 상황에서 공직자로서 또 부처의 수장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다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예산이나 법안 국회 대응 등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어 묵묵히 현안업무를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처의 실장은 “실망스런 보도가 이어져 공소장이 놀랍지 않다”며 “다만 국정공백이 길어지면 그 피해가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계속 버티면서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게 됐는데 부처 소관업무에 더 집중해 누수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처의 차관은 “정부는 국민이 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조직”이라며 “국정농단으로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에 대해 많은 의혹이 있지만 임용된 순간부터 그만두고 싶어도 최후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게 정무직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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