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당신은 봉입니다" 아파트 선분양제의 배반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 2016.11.21 04:37

[부동산시장 왜곡하는 선분양제-②]하자분쟁, 허위·사기분양, 할인분양 등…소비자에만 부담 씌우는 구조

편집자주 | 청약 광풍으로 불릴 정도의 부동산 열기를 등에 업고 무분별한 밀어내기 분양이 판을 치면서 공급과잉과 악성 미분양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를수록 공급 과잉 후폭풍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왜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선분양이 중심인 우리 주택공급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DB

#최근 준공된 한강변 A아파트에 입주한 B씨는 요즘 울화통이 터진다. 분양가 14억원에 웃돈 2억원을 더 얹어 16억원이나 주고 입주한 새 아파트지만 결로현상으로 집 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는 등 하자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B씨 뿐만 아니라 이 아파트 입주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하자를 성토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바닥이 울퉁불퉁 하다든가 천장 마감이 덜 돼 틈이 생기는 등 하자 종류도 다양했다. 입주자들은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인데 기본적인 시공, 마감도 제대로 안 돼 있는 게 말이 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2014년 6월 인천 영종도의 영종 하늘도시 H아파트에서는 입주자 정모씨(55)가 몸에 불을 질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할인분양으로 인한 갈등 때문이었다. 1300여가구 중 미분양이 800여가구에 달하자 건설사는 최대 30% 할인분양을 실시했고 제값을 주고 입주한 주민들의 불만은 폭주했다. 이들은 할인분양을 받은 사람들의 입주를 막기 위해 아파트 입구를 막고 집회를 벌이는 등 갈등을 빚었고 이 와중에 분노한 정씨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홍보와는 다른 시공이나 허술한 마감, 입주 후 할인분양과 같은 소비자 피해가 선분양제도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억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상품이지만 선분양제도에서 소비자들은 실제 완성품을 보지도 못하고 아파트를 구매해야 한다. 입주한 뒤 결로현상 등 각종 하자가 발생해도 계약을 물릴 수가 없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머니투데이 유정수 디자이너
아파트 하자로 인한 분쟁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 신청 건수는 지난 10월까지 3236건이었다. 2009년 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분쟁 건수는 △2010년 69건 △2011년 327건 △2012년 836건 △2013년 1953건 △2014년 1676건 △2015년 4244건 등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건설사들이 후분양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다 지어놓고 팔면 아파트에 하자가 있는지, 마감 상태는 어떤지 소비자들이 직접 살펴보고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사 입장에서는 부담이라는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후분양을 할 경우 사람들이 주변 단지와 비교해보고 따져보기 때문에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 시공하는 관행대로 후분양을 하면 (품질 문제로) 안 팔리는 아파트가 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보된 내용과는 다르게 지어지거나 중간에 설계변경이 이뤄져 소비자가 피해를 입어도 마땅히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선분양의 문제로 꼽힌다. 여러 판례에 따르면 단지 주변에 지하철이 들어온다든가 각종 개발 호재가 있다는 내용으로 광고를 했는데, 실제 입주해보니 계획대로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도 건설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개발계획은 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사업이므로 이를 광고에 인용하기만 한 건설사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다.

건설사들이 홍보책자 구석에 깨알같은 글씨로 써 넣는 문구도 소비자에게는 불리하다. '아파트의 실제 모습은 본 이미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대부분의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면피성 문구 하나로 여러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려는 건설사들의 꼼수다.

법무법인 로쿨의 전선애 변호사는 "분양광고에 허위나 과장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법원에서 인정하는 기준은 꽤 까다롭다"며 "피해가 발생했을 때 분양대금 반환 소송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 등이 있지만 승소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런 제도적 맹점들이 후분양을 기피하고 선분양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미분양이 발생하면 건설사들은 종종 할인분양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먼저 계약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분양가를 비싸게 책정해 미분양이 나도 할인분양이라는 방법이 있으니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한마디로 먼저 산 사람만 '봉'인 것이다.

한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체) 관계자는 "집 짓기도 전에 분양대금부터 받고, 다 못팔아도 할인분양을 하면 되니 건설사로선 이득일 수밖에 없다"라며 "선분양을 하는 우리나라만큼 건설사가 돈 벌기 쉬운 나라가 없다"고 꼬집었다.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후분양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후분양제가 정착돼야 건설사들도 잘 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활성화, 다양한 보증상품 개발 등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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