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구름처럼 산새처럼 그냥 가거라

머니투데이 공광규 시인 | 2016.11.23 17:13

<75> 김동수 시인 ‘그림자 산책’



화자는 시골 동네를 지나다가 아무도 없는 빈집을 발견하였다. 이 빈집에 누가 살다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시골에서 흔하게 하던 소꿉놀이 하던 아이들이나 텃밭을 가꾸던 할머니도 보이지 않는다. 화자는 이들이 바람이나 구름을 따라 갔나, 아니면 민들레 깃털처럼 하늘로 날아갔나 하고 추정한다. 사람이 살던 집이라서 울타리도 그대로 있고, 푸른 앞마당도 그대로다. 인생의 무상성을 빈집과 주변의 자연풍경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런 고유의 전통 서정과 불교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시집을 묶은 김동수 시인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1981년 ‘시문학’으로 등단하였다. 그동안 ‘말하는 나무’ ‘흘러’ 등 여러 권의 시집을 내었다. 백제예술대학교에서 정년을 하였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시 ‘그림자 산책’을 포함하여 그림자를 제재로 한 여러 편의 시가 보인다.

시 ‘그림자 산책’은 길거리를 지나다가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의 그림자에서 시를 발상한 것으로 보인다. 화자가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화자의 그림자가 화자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을 시로 잡아내었다. 시력이 많지 않고는 이런 경험을 시로 형상하기 어렵다. ‘그림자에 젖다’는 제목의 시도 있고, ‘그림자의 노래’도 있다. 그림자의 사촌은 그늘일 것이다. 시인은 시 ‘그늘’에서 “딛고 오르다/ 그만 얼룩이 되었다// 더 이상/ 다치지 않기 위해// 양지에서 내려/ 그림자가 되었다”고 한다.

집착하지 마라
기대하지도 마라

사랑이
근심이 되고

마음이 상처가 되나니

머물다 가는

구름처럼

지저귀다
날아가는 산새처럼

머물다
흩어지고

앉아 있다 그냥 가거라.
- ‘그냥 가거라’ 전문

이렇게 김동수는 살아가면서 대상이나 사건에 집착하지도 기대하지도 말고 구름처럼 산새처럼 머물다 흩어지라고 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가라는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바람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성적 풍모와 철학적 사유방식”이 가득한 시집이다. 시인의 인생관이 일관된 불교적 상상력에 바탕하고 있다. 서재나 카페에서, 아니면 산사에서 “손이 비어 허전한 날/ 저잣거리로 나가/ 손은 자꾸만 악수를 하였다.”(‘악수’ 전문)는 김동수의 시집을 펴고 인생을 들여다보자.

◇그림자 산책=김동수 지음 미당문학사 펴냄. 126쪽/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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