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권력은 여전히 靑에 있었다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 2016.11.17 06:23
2014년 1월 21일(현지시간) 스위스 수도 베른.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고,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하는 대통령을 동행 취재했다. 포럼 기간 중 다보스에서 숙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기자단 숙소는 3시간 거리인 베른에 마련됐다. 풀(Pool) 취재 시스템에 따라 펜(취재)기자 2, 사진, 카메라 기자 각 1명만이 다보스행 열차에 오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추억 속 이날이 떠오른 건 청와대가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했다는 보도 탓이다.

기사를 송고한 뒤 “시간 되면 저녁이나” 하자는 제안에 베른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CJ그룹의 고위임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고 의아해 하자 “중동 일이 있던 참에 들렸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대화는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한 이 부회장 얘기로 흘러갔다.

이 행사는 국가 투자설명회(IR) 장이다. 박 대통령은 포럼에서 정권 간판사업인 ‘창조경제’ 알리기에 힘을 쏟았다. 당시 청와대 내에서 ‘CJ가 찍혔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영화판이 좌 편향, 반정부적이 된 게 CJ그룹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 중심에 이 부회장과 ‘이미경 키드’가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2013년 5월, 박근혜 정부는 취임 뒤 첫 재벌기업 수사로 CJ그룹을 택했다. 속전속결 수사로 이재현 회장은 7월 16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되며 그룹 경영에서 퇴장했다. 동생의 부재를 누나인 이 부회장이 대신했다.

CJ는 박근혜 정부와 관계를 트지 못해 벌어진 일로 여겼고, CJ가 ‘창조경제’의 약어라는 조롱 섞인 말까지 들어가며 정책 홍보에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CJ 대관 업무 담당자들은 정권 핵심부 내 기류 파악을 위해 청와대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기자들과 접촉했다. 그런 상황에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을 빛내주기 위해 다보스에 나타났다. “이제 웬만큼 관계가 풀어졌나 보죠?”라고 묻자 한동안 뜸을 들인 후 “아직도 어렵다”는 임원의 답이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월 21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벨베데레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사진 오른쪽이 이미경 전 CJ그룹 부회장(청와대)
어쨌든 대통령이 재판 중인 기업의 부회장과 나란히 서 있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집권 2년 차 청와대가 기업 옥죄기보다 일자리 창출과 투자 유도에 나서겠다는 것 아니냐는 선의의 해석을 전했다. 행사 후 청와대는 불쾌해 했다. ‘원톱 주연’ 박 대통령보다 조연인 이 부회장과 싸이가 더욱 주목받았다는 거다. 박 대통령의 ‘굴욕’ 이었다. 이 부회장은 9월 물러났다.

그런데 최근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2013년 12월 박 대통령 지시로 이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했다는 녹취가 폭로됐고,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동원하려 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복기해보니 이 부회장은 필사적으로 대통령의 오해를 풀어야 했고, 여러 경로를 동원해 다보스포럼을 그 장소로 택한 거였다. 사진 속 찍어내려는 자와 버티려는 자는 서로를 향해 웃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청와대에 휘둘렸던 CJ는 창조경제 응원과 ‘국뽕’ 영화를 기획했고, 이 회장은 풀려났다. 권력은 사악했고, 기업을 부조리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권력은 이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지만, 여전히 구중궁궐 청와대에 있었다. 국정운영을 '소꿉놀이'이 하듯 한 정권이 이를 온몸으로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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